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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25. 2022

예쁘게 말하는 착한 딸 필터

100일간의 다짐

 엄마와 함께 살 날도 이제 석 달이 채 안 남았다. 아이의 출생과 함께 엄마에게 도움의 손길 내밀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엄마는 요즘 자주 쓸쓸한 표정을 지으신다. 신생아였던 손녀를 품어 10년 넘게 키워주신 우리 엄마. 손녀만 키운 것이 아니라 돈을 번다는 핑계로 집안일 등한시한 딸의 빈자리도 고스란히 엄마 몫이었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몸은 힘들어도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 좋았다는 엄마. 이제 곧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서운한 마음이 엄마 얼굴에 자주 그림자를 드리운다.


 며칠 전 집에 돌아와 보니 내가 아끼던 장식품 하나가 재활용 박스 안에 고꾸라져 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며 아무런 필터 없이 가시 돋친 말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왜 항상 물어보지도 않고 내 물건에 손을 대느냐며 10년 전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어 엄마를 다그쳤다. 평소라면 똑같이 목소리 높여 이런 게 뭐가 그리 대수냐며 반박하셨을 텐데 오늘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침착하려 애쓰시며 변명을 하는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엄마 얼굴에 비치는 서운함. 그 약하고 초라한 모습에 멈칫... 이내 내 마음 무너져 내렸다.


 엄마에겐 언제나 미안했다. 해드린 것도 없는데...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용돈을 많이 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이라도 예쁘게 해서 엄마와 살갑게 지내는 것도 아닌 내가, 나의 존재가 그냥 미안했다. 이상하게 엄마한테 말할 때는 아무런 필터가 걸리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 필터도, 친구들과의 관계를 신경 쓰는 생활인으로서의 필터도, 평화로운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아내의 필터도, 아무것도 통과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내게 엄마는 항상 '넌 왜 나한테만 못되게 구느냐'며 속상해하셨다. 밖에서는 엄마란 단어만 나와도 왈칵 눈물을 쏟으면서 막상 엄마 앞에선 말 한마디 예쁘게 못하는 나의 이중성 기가 막힐 뿐이다.


 허나 이런 나의 이중성도 흔들리는 엄마의 눈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여생에서 언제 나랑 또 살아보겠느냐며 남은 기간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엄마의 말에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앞에선 눈물에도 필터가 걸리지 않는다. 나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통곡소리가 내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엄마에게 뺨을 비벼대며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내가 잘할게".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얼마를 울었을까. 엄마가 나지막이 입을 떼신다. 일찌감치 머니 먼 타국으로 이민을 떠난 둘째 딸은 어느덧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에서도 멀어졌고 엄마 곁에 남은 나 하나 바라보며, 오직 나만 의지하고 산다는 엄마. 얼마만큼 미안하고 얼마만큼 죄송하면 엄마를 다시 웃게 만들 수 있을까. 가늠할 수도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올해 칠순이 되신 엄마는 이렇듯 부쩍 약한 모습을 많이 보이신다. 뜻하지 않게 마주하는 그 순간마다 마음 한 곳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듯 저릿하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엄마는 큰 산과 같았다. 그 연배 중에선 꽤 큰 키였던 우리 엄마는 고운 얼굴만큼 옷도 멋지게 잘 입는 사람이었다. 엄마와 손을 잡고 버스를 타면 양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움켜 잡고 날 지그시 내려다보시던 엄마. 엄마의 세련된 코트자락 한 움켜쥐고 머리를 한껏 쳐들어 엄마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산이 날 둘러싼 것만 같았다. 어느 날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었다. 한 송이가 아닌 낱개에 500원이나 하던 귀하디 귀한 바나나를 얻어먹으려 한껏 들떠 있던 그때, 갑자기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의 내게도 엄마에 대한 무한신뢰가 있었던 것 같다. 화들짝 놀라 나를 애타게 찾던 엄마는 손을 놓친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태연히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곤 신기했었다고 했다. 렇게 내 보호자로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우리 엄마.


 그랬던 엄마가 언제 이렇게 작아졌을까. 내가 두 팔로 감아 안아도 품이 한참 남아돈다. 차로 한 시간을 꼬박 가야 하는 동네로 이사 계약을 한 날, 엄마는 슬픈 미소를 머금고도 '잘했다'라고 하셨다. 전철역에서 집이 가까우니 운전을 못하는 엄마도 언제라도 쉽게 오실 수 있다는 내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엄마 말처럼 10년간의 동거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40년이 넘도록 사용하지 않았던 '예쁘게 말하는 착한 딸' 필터를 사용해야겠다. 엄마니까, 엄마라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너무 익숙해서 엄마의 마음은 차마 헤아릴 생각도 못했다. 내겐 언제나 커다란 산이었던 엄마기에 엄마도 상처받을 수 있음을, 엄마도 서운할 수 있음을 작아진 엄마의 몸을 마주하고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효녀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적어도 엄마 마음 아프게 하는 딸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40 넘어 처음 사용해 본 이 필터가 아직은 어색하다. 제발 남은 100일간 이 필터에 의지해 엄마 얼굴에 다시 웃음을 불러올 수 있길, 그렇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길... 간절한 마음으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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