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매일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듯 습관처럼 글을 써야 하는데 이직 후 마음이 온통 콩밭에 가 있으니 글이 써질 리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는 건 땅을 파는 행위와 같다고 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땅을 두드리고 흠집을 내고 조금씩 꾸준히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그 땅 아래 깊숙한 곳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한다고... 많은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 작품 하나하나는 모두 새로운 땅을 파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어느 것 하나도 미리 파져 있던 구멍에서 쉽게 시작한 것이 없었다며 세계가 인정한 글쓰기의 장인조차 글쓰기의 막막함을 고백한다.
요즘의 나는 겨우내 차갑게 얼어붙은 땅을 조금 두드리다 말고 두드리다 말고를 반복하는 기분이다. 집중이 안 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땅이 물러질 때까지 기다리면 조금 쉽게 구덩이를 팔 수 있을까 싶어 매일 커서가 깜박이는 이곳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파내려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내가 원하는 깊이까지 파낼 수 없음을 반복해서 깨닫게 될 뿐이다. 이렇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따스한 봄이 곧 찾아와 땅을 녹여주면 수월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가 선 땅에 봄은 오지 않고 자꾸만 찬서리만 내린다. 겨울이 다시 오려나보다.
그제 얼마 전 퇴사했던 회사의 임원이 전화를 했다. 어쩌면 내 퇴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는 껄끄러운 인사다. 심지어 전화번호도 지워버려 안부를 묻는 그의 문자에 실례지만 누구냐고 회신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 간의 반목은 벌써 잊었는지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에 난 또 그만 긴장을 놓아버렸다. 그는 회사를 옮긴 지 이제 갓 한 달을 넘긴 내게 자신의 부서에서 함께 일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황당하고 말문이 막힌다. 막상 같이 일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때는 나 몰라라 했던 그가 이 타이밍에 내 손을 잡으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퇴사를 결정한 후에도 그는 이런 식으로 뒤늦게 손을 내밀었었다. 물론 난 그 제의가 진심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해서, 혹은 혹시라도 나의 퇴사로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까 봐 면피용으로 내놓은 카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포지션에 나를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그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 이란다.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야 나를 돌아봐준 그와 긴 시간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5개월간 나를 밀어내려고만 했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서로 쿵작이 잘 맞는 걸 발견했던 놀라운 만남이었다. 마케팅 분야에서 오래 일해온 그와 나는 마케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그 회사에서 동일한 성격의 좌절을 함께 겪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동질감과 서로를 진작 알아봤더라면 6개월도 안되어 사직서를 쓰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퇴사 전날 그 마음 가득 담아 짤막한 이메일을 보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메일 한통. 그는 그 메일을 보고 내가 글을 쓰는 일에 진심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그 작은 진심이 자신이 제안하는 포지션에 꼭 필요하다고, 그러니 잘 생각해보라고 덧붙인다. 내 마음속 깊이 묻혀있는 욕망을 들켰다는 것에 대한 창피함보다는 날 알아봐 주었다는 생각에 그나마 남아있던 경계의 벽마저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 참 속도 없다. 내가 왜 그 고생을 했는지 잊었냐며 자책하고 싶지만 이미 지난 일로 또다시 내 마음속 상처를 휘젓는 것보단 기분 좋은 놀라움에 마음을 내맡기는 편이 낫질 않나.
이렇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통해 다시금 자판을 두드릴 용기를 얻었다. '내가 두드리는 자음 하나 모음 하나가 모여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음에 뿌듯함을 느껴도 된다'라고 '넌 자격이 된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 꾸준함과 성실함이 모여 어느 날 문득 스스로도 놀랄 만한 자부심으로 돌아올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지금은 여전히 녹지 않은 땅을 수십 번 수백 번 두드리고 찍어 내리는 일을 반복해야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만든 근육은 언젠가는 이 일을 조금은 수월하게 만들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