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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Jul 05. 2022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더라.

 6월의 마지막 날.

거세게 내리치던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진다. 그래도 이삿짐에 비 안 맞히긴 틀린 것 같다. 10년 동안 살던 이 시골 동네를 드디어 뜨는 날. 이 동네에서의 기억을 각인시키려는 듯 이삿날에 추억 한포 대기 선사하는 이 빗줄기가 이상하게도 싫지 않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 산다는 누군가의 말 때문일까? 새로운 곳에서 결혼생활 2막을 시작하게 된 우리 부부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질 못 하고 새벽 4시부터 깨어있었다.


 어제 마지막으로 등교했던 아이는 커다란 선물 보따리와 친구들이 작성해 준 롤링페이퍼를 들고 왔다. 아이의 이름을 정성스레 적고, 아쉽다며 꼭 다시 만나자는 아이 친구들의 글에 나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림을 잘 그려 아이가 항상 부러워하던 한 친구는 아이를 닮은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을 잊지 말라며 편지를 보내왔다. 그 그림을 보자 눈물을 참고 있던 아이가 와락 아빠품에 안겨 한참을 울먹인다. 덩달아 옆에 있던 엄마와 할머니도 눈시울이 빨개졌다. 나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했던 경험이 있다. 아직 친구들이 좋은지 어쩐지도 모르던 어린 나이였지만 전학 가던 날은 생생히 기억난다. 교실에 가득했던 그 어색한 공기와 이상하게 긴장되어 땅만 쳐다보고 교실 앞에 서 있던 나. 모든 반 친구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기억. 그걸 똑같이 겪을 아이에게 '나보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속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넨다.


 오전 내내 비가 올 거라던 기상 예보는 오늘따라 딱 들어맞는다. 혹시나 싶어 이사 시간을 한 시간 뒤로 연기했지만 여전히 이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결국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것보다는 시원한 빗줄기 속 이사가 낫지 않냐며 행복 회로를 열심히 돌려 본다. 이윽고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그 많은 짐들이 이삿짐 차 안 속에 차곡차곡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차 안이 빼곡히 들어찰수록 엄마로부터 진짜 독립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음이 실감 난다.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것이 처음도 아닌데 이번 분가는 이상하게 기분이 남다르다. 20년 전 부모품을 떠나 혈혈단신 영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했던 때는 머나먼 이국 땅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다른 모든 감정을 지배했었다.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해방감과 혼자라는 외로움이 동시에 물 밀듯이 들어찼지만 내 마음속 어디에도 엄마와의 이별이 이토록 애닳프진 않았었다. 한참 후 결혼을 할 때는 내 평생 반려자를 만났다는 설렘이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기분은 뭘까...' 자꾸만 곱씹게 된다. 10년간 우리 딸의 엄마였던 우리 엄마. 어느새 다 자라 할머니의 손길이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은 아이는 생각보다 더 담담하게 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눈치다. 아이의 그 담담하다 못해 설레는 표정에 엄마보다 내가 다 서운하다. 10년을 아이 때문에 처가살이를 해야 했던 꼼군은 더 들뜬 모습이다.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나 난 자꾸만 엄마 눈치가 보인다.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고추, 마늘, 당근, 양배추에 직접 담아 익혀둔 김치까지 차에 실어주신다. '내가 어디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왜 가져가냐'며 엄마한테 볼멘소리를 하려다가 그냥 꾹 삼켜버렸다. 그냥, 엄마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어느덧 차에 시동이 걸리고 진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차에 짐을 다 실어준 엄마는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 양 우리가 떠나는 모습도 보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그 작고 야윈 뒷모습에 꽉 동여매 둔 눈물샘이 결국 터져버렸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왔다며 엄마 품으로 돌아갈 일도, 아이를 키워달라며 같아 살자 할 명분도 없다. 엄마의 여생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한 편 우리 가족이 떠난 빈자리에 마음 시려할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빗속을 뚫고 달려가는 이삿짐 차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굉음을 내며 앞서가고 내 얼굴은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젖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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