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이탈리아 일주 EP02.

로마, 바티칸 투어

by 지오바니

오늘은 꼼군이 로마에 온 단 하나의 이유. 바티칸 투어가 있는 날이다. 유럽의 역사와 건축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더해 종교인으로서 호기심으로 무장한 그는 이탈리아 여행이 결정된 직후부터 바티칸 투어를 엄청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오전과 오후 두 번에 나누어져 진행되는 이 투어는 장장 4시간을 걸어야 하는 로마 3대 철인 투어 중 하나다. 오전, 오후 투어 중 어떤 게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더운 낮 시간에는 실내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오후 1시에 시작하는 투어를 신청했더랬다. 그런데 웬걸... 실내이긴 하나 우리에게 일명 천지창조라 알려져 있는 천장화를 볼 수 있는 시스티나 성당 외에는 어떤 공간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단다. 오후의 타는 듯 내리쬐는 햇살과 한여름 성수기가 아니라고 해도 언제나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이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장장 4시간을... 시작부터 걱정이 밀려온다. 가이드는 투어에 앞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성스러운 곳이니만큼 민소매와 반바지는 입장이 불가하니 노출을 가려줄 것. 사람이 너무 많아 손을 뻣어 사진을 찍을 공간조차 없는 홀이 많으며 그렇기에 멈춰 서면 사고가 나기 때문에 발은 계속 움직이고 손은 사진을 찍으며 귀로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는 원칙까지. 생각해 보면 '완전히 사서 고생하는' 투어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이미 한번 방문을 했던 경험이 있어 큰 기대나 감흥도 없다. 하지만 기왕 온 거 다시금 위대한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실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거금을 들여 패스트트랙 티켓을 구매했더라도 지정된 입장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서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다행히 벽 쪽으로 살짝 그늘이 져 그곳에 바짝 붙어 잠시라도 해를 피해 본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의 기대 섞인 흥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투어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혹시 모를 테러 방지를 위해 엑스레이로 짐검사를 하고 두 번의 티켓 스캔을 거치니 그제야 입장이 완료되었다. 16년 만에 다시 밟은 땅이다. 이 바티칸 제국은 교황님이 왕으로 있는 나라다. 무엇이든 교황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법이 되어 실행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국가, 바티칸 인 것이다. 그 한 예로 베드로 성당 광장 앞에 커다란 삼성 티브이가 몇 대씩 설치되어 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삼성의 회장님이 이곳을 방문한 뒤 엄청난 감동을 받으셨고 이에 수신기 등을 기증하고자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님은 현물 말고 현금 기부를 원하셨고 이를 수락한 삼성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일 이후 바티칸은 얼마 전 제국 내에 모니터를 교체할 일이 생겼고 기존에 있던 일본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지 않고 삼성으로 전부 바꾸었다고 한다. 외국에 나오면 전부 애국자가 된다더니 삼성과 아무 관련이 없는 나도 베드로 성당 앞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삼성 모니터에 괜히 어깨가 으쓱하다. 또한 바티칸 제국은 원래 교황님의 집과도 같은 곳으로 이곳에 있는 수많은 작품들은 대부분 교황님이 받은 선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지에 있는 국립 박물관들이 오랜 옛날 다른 나라에서 빼앗아온 유물과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커다란 차이점인 것이다. 이곳에 있는 작품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것은 없다는 사실이 이곳을 더 성스럽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뒷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롭지만 물론 여기에 온 목적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기 위함이다. 누구나 천지창조라고 일컬어지는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 ET 에서처럼 아담과 하나님이 손가락을 하나 펴서 서로를 향하고 있는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4년 6개월에 걸쳐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장화의 일부다. 다시 말해 정식 명칭은 천지창조가 아닌 천장화라는 것. 4년 6개월을 꼬박 천장에 매달려서 하루에 18시간씩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이로 인해 큰 병을 얻게 된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고문이 아닐 수 없다. 석고가루를 너무 맞아 눈은 거의 실명이 되었고 몸도 거의 성한 데가 없을 지경이었다고 하니 아무리 교황님의 요청이었다고 해도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계기로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미켈란젤로. 그러나 시간이 흘러 또 다른 교황의 요청대로 지옥과 연옥, 천국을 상징하는 작품을 다시 그리게 된다.

실제 작품을 보러 가기 전 거의 한 시간 동안 천장화를 세분화한 설명이 이어졌다.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서는 가이드의 설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모르고 봤다면 그냥 천장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그림이었을 이 작품이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한 부분 한 부분 전부 뜯어 상세히 그 의미와 뜻을 알고 나니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다. 아이도 본인이 기억하는 이야기들을 작품을 보며 하나씩 짚어냈다. 나처럼 시간이 흐르면 전부 잊어버리겠지만 여하튼 지금 이 순간만큼은 똘똘한 눈빛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비록 발은 천근만근이고 몸은 땀에 절었지만 가장 큰 숙제를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 이렇게 철인 투어 중 또 하나를 완수하고 고생한 가족들과 맛난 저녁식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씻자마자 이른 저녁부터 곯아떨어진 식구들이 깰까 싶어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오늘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세 번째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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