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끄럽지만 이 것이 내 인생 첫 비행기다. 스무 살이넘어서야 처음 타게 된 비행기. 그것도 2박 3일 제주도 여행도 아니고 부모님과 동행하는 동남아 여행도 아니고 아무 연고도 피붙이도 없는, 심지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내 인생에 첫 비행이라니. 용기가 가상했구나 20대 초반의 난.
비행기를 타는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숨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고 긴장감에 목이 바짝바짝 타올랐다.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연히 영국유학준비 카페에서 만나 런던까지 동행하게 된 선희라는 아이는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맥주를 들이켜고는 금세 쿨쿨 잠이 들었다. '배낭여행을 한번 다녀왔다고 하더니 역시 뭔가 다르구나'라고 감탄하며 그 아이의 천하태평함이 내심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의지가 되었다. 그녀는 이번 런던행을 결정한 것도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시작하며 일찍부터 경험한 사회생활과 경제활동 덕에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훨씬 어른 같았다. 그녀처럼 나도 잠을 청해봤지만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도통 잠이 올 것 같진 않았다. 안 그래도 불편한 이코노미석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앞으로 펼쳐질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낯선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엉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불현듯 부모님 생각이 났다. 오늘 아침 '다녀올게요..'라고 하자 전형적인 한국의 무뚝뚝한 아버지인 아빠는 예상치 못하게 날 가만히 안아주셨다. 잘 다녀오라고... 일 때문에 공항에 못 나간다고 하시며 대문을 나서시는 모습에 눈물이 핑돌고 목이 메어왔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부모 곁을 떠나는구나.
나처럼 마마걸이라는 소리 들으며 엄마 치마폭에 둘러싸여 자란 사람이 무턱대고 이건 아니야, 떠나야겠어!라고 갑자기결정할 수 있는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다. 항상 네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지원해 주신 부모님은 물질적인 것보다 항상 난 널 믿는다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 덕분에 내향적인 성격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던 나도 무언가에 도전해 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껏 그러한 모습을 꾸준히 보여드렸기에부모님은 학교며 머무를 곳, 심지어 비행기표까지 전부 알아서 준비하고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 딸아이를 또 한 번 믿어보자 생각해 주신 것이 아닐까? 물론 부모님이 반대한다고 포기할 나도 아니었다. 허나 막상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도저히 그런 담대한 부모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알바로 모은 단돈 200만 원을 들고 영국으로 가겠다는 딸에게 아빠는 이제 조금 있으면 결혼할 나이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셨다. 그렇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내게 더는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고 엄마는 공항에서 신용카드 하나를 손에 쥐어주셨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생활비도 빠듯할 텐데 정말 필요할 때 쓰라며 주신 그 신용카드는 그 먼 곳까지 나를 따라온 엄마의 마음 한 조각 같아 볼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따뜻했다.
이런저런 생각과 걱정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작은 창문 너머로 런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엔 오후 3시면 해가 진다더니 저녁 6시인데도 한밤중처럼 캄캄하다. 한국에서 등록한 9개월짜리 영어학원 등록증서를 보여주곤 여권에 10개월짜리 학생 비자 도장을 받았다. 드디어 밟은 영국땅. '나 런던이야!'라고 하는 듯, 셜록홈스를보며 상상했던 음습하고 축축한 차가운 칼바람이 얼굴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