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영국에서 살아남기(4)

영국에서 은행계좌 만들기

by 지오바니

새 집에서 맞는 두 번째 날이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위해 학원 리셉션을 방문한 직후부터 영국영어의 큰 벽을 실감했다. 나름 한국에서 괜찮은 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를 나왔고 영어를 좋아한다며 이곳까지 왔지만 10년 넘게 미국영어만 배운 내게 영국 사람들의 발음은 거의 독일어처럼 생경했다. R 발음이 거의 없고 특유의 악센트까지 합쳐지니 쉬운 문장조차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반 배정을 위해 레벨 테스트를 진행할 때였다. 읽고 쓰는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한 뒤 안심하고 있는 내게 뜻밖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왜쥬리브?"

(왜? 여기서 왜가 왜 나와? 이게 무슨 소리야?)

한 순간 너무 당황해서 말문이 막혀있던 내게 선생님은 해맑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 설마 지필시험을 쉽게 통과한 네가 이걸 못 알아듣느냐는 불신이 약간 섞인 표정이었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난감해지려는 찰나 큰 깨달음이 왔다. 아! "Where do you live?". 안도감과 경악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이게 이제부터 내가 익숙해져야 할 영국영어구나'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뒤로하고 어찌 됐건 학교 등록을 무사히 마쳤다. 집구하기와 학교등록까지 큰 산 두개를 넘었으니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꼭 필요한 은행계좌를 만들 차례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 땐 신분증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이곳에선 아주 기본적인 은행 입출금 계좌를 만드는 것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나 같은 가난한 유학생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 이곳은 사는 곳의 주소가 곧 그 사람의 신용과 연결되어 있어 그 집에 전에 살았던 사람의 신용이 좋지 않다면 지금 사는 사람도 영향을 받게 되는 특이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사는 집처럼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주소는 외국인들이 계좌를 마이너스까지 빼서 사용하고 갚지 않은 채 귀국해 버린 사례가 많아 좋은 신용점수를 받기는 애초에 틀렸다는 뜻이다. 그래도 부딪쳐봐야지 별수 없다. 은행계좌를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편법들이 인터넷에 떠돌았지만 우선은 정면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차별 같은 건 없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이 나라도 다른 나라와 다름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엄청 중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직 신분제도의 하나인 왕실이 존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신분대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본인이 속한 신분을 인정하고 그걸 뛰어넘기 위해 딱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난 심지어 아무 신분등급에서 속하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 아니 유학생이 아닌가. 내가 가져온 옷 중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새로 구입한 최신형 핸드폰을 잘 보이도록 손에 쥐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Natwest Bank에 찾아갔다. 정장을 잘 차려입은 은행원과 1대 1로 신규 계좌 오픈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며 일부러 테이블 위에 잘 보이도록 핸드폰을 놓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공부할 계획으로 매달 그 계좌로 한국에서 생활비와 학비를 송금받을 거라는 거짓말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무참한 실패였다. 학생비자가 1년이 안되어서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일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쉽게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영국에는 GP(General Practitioner)라는 동네주치의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감기 정도 아프다고 대형 병원에 쉽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1차 의료시설인 GP에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그 GP 등록증을 가져가면 Lloyds라는 은행에서 입출금만 가능한 기본계좌를 발급해 준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바로 우리 집 주소지에 할당된 GP에 예약 후 방문했다. GP 등록을 위해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하고 몸무게를 재는데 타지 생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새 2-3킬로가 빠져있다. 너무 말랐다며 영양보충 잘해야 한다는 GP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그저 등록증을 빨리 받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집에 와보니 은행계좌 문제를 엄마에게 전해 들은 외삼촌에게 연락이 와있다. 해외에도 사업체가 있는 외삼촌은 런던 외환은행 지점장을 잘 안다며 말해놓을 테니 거기 가서 계좌를 만들라고 하셨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소엔 비싸서 잘 타지도 못하는 지하철을 타고 외환은행이 있는 시내로 달려갔다. 창구에 있는 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얘기 전해 들었다며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안도감에 기뻤던 것도 잠시, 런던의 외환은행은 기업만 상대로 하는 지점으로 원래는 개인의 계좌를 취급하지 않는단다. 다시 말해 계좌를 만들 수는 있으나 런던 내에 있는 ATM기는 사용할 수 없고 입출금을 위해서는 꼭 이 지점 창구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잠시 망설였지만 쓸모없을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할 순 없는 일이었다. 외삼촌께는 감사히 잘 만들었다며 실망하시지 않도록 선의의 거짓말을 하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주쯤 흘렀을까. 손꼽아 기다리던 GP 등록증이 도착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간 은행에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계좌 신청을 했다. 아직도 그날 상담을 담당했던 동유럽계 여직원의 얼굴이 선명하다. 강한 동유럽 악센트로 사무적으로 말했지만 최대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거의 런던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은행 계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정말 단 한 개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다. 물 한잔을 먹으려 해도 생수를 직접 사 오는 수고를 감당해야 하고, 밥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음식을 주지 않고, 옷을 빨아놓지 않으면 당장 내일 입을 옷이 없으며,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달 월세를 낼 수 없다. 얼마 안 된 이 시간 동안 난 찰나의 자유함을 만끽한 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기분이다. 나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삶이 이렇게도 버거운 것임을 난 스무 살이 넘어서야 겨우 깨닫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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