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혈단신 영국에서 살아남기(7)
넌 잘하는 게 뭐니
2003년 비 오는 겨울의 어느 날
하루 종일 비가 오는 음산한 날이다. 영국의 겨울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축축한 칼바람에 살이 에인다. 그 탓에 비록 온도 자체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더라도 칼바람에 뼈가 시려, 오자마자 한국에서도 안 입던 내복을 사 입었다. 우리나라처럼 바닥난방이 없는 이곳은 벽에 설치된 라디에이터가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난방기구다. 그 라디에이터마저도 하루 종일 켜주지 않으니 집 안에서 아무리 껴입어도 도대체 한기가 가시질 않는다. 아무래도 열을 내려면 차라리 밖에 나가 몸을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기왕 움직이는 거 큰맘 먹고 조금 멀리 가보기로 했다. 버스로 한 시간 가까이 걸려 뉴몰든에 도착했다. 한인들이 모여사는 이 동네엔 커다란 한국마트가 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김치를 담가볼 요량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국 배추는 구하기 어려워 가까스로 중국산 알배추를 사고 고춧가루 등 양념과 내 시선을 사로잡은 초코파이, 절편떡에 요즘엔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분홍 소시지까지 집었다. 여기서 그쳤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한국 식재료를 보니 정신줄을 놓고 그만 삼겹살까지 폭풍 쇼핑을 해버리고 말았다. 민박집에서 구경만 했던 삼겹살에 대한 보상심리였던가. 집에 오자마자 바짝 구워 홀랑 먹어버렸다. 어찌나 꿀맛이던지 날씨 탓에 덩달아 우울했던 내 마음까지 어루만져준다. 비싸서 자주는 못 먹겠지만 가끔씩 정말 한국이 그리울 땐 이런 약간의 사치는 부려야겠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호기롭게 배추를 사 오긴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인터넷을 한참 뒤져 겨우 아주 간단하게 설명된 김치 레시피를 찾았다. 양파를 많이 갈아 넣어 단맛을 내는 레시피인데 요알못인 나도 따라 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다. 알배추 2개에 굵은소금 팍팍 뿌려 재워놓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한국젓갈 대신 태국산 피쉬소스를 넣고 마늘, 파, 고춧가루에 양파를 한가득 갈아 섞어 먹어보니 제법 김치 양념다운 맛이 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첫 술에 배부를 모양이다! 절반의 성공에 한껏 고무된 나는 자신 있게 절여 놓은 배추에 양념을 골고루 묻혀 큰 그릇에 옮겨 담았다. 배추 2 포기 담그면서 마음은 1년 먹을 김장김치 20 포기 해놓은 양 벌써 배가 부르다.
그런데 순간 뭔가 싸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설마설마하며 양념해 놓은 김치를 하나 베어 먹었다. 아뿔싸... 김치가 완전 소금덩어리다. 소금에 재어 놓은 배추를 씻지 않고 그냥 양념에 무쳐버린 것이다. 양념 다 묻은 김치를 이제와 씻을 수도 없고 이 귀한 걸 버리는 건 더더욱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할 수 없이 김치 한 조각에 밥 한 공기 다 먹으면 된다고 자조하며 소금김치를 냉장고 안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어쩜 이렇게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지... 이곳에 온 이후로 매번 나 자신에게 놀라는 중이다. 지난번엔 나물이 먹고 싶어 비싼 도라지를 사 와놓곤 제대로 손질할 줄 몰라 그냥 양념을 했더니 너무 쓴맛이 나서 하나도 못 먹고 다 버려버렸다. 음식은 고사하고 관심 없다는 핑계로 스무 살이 넘도록 옷 한 벌도 내가 골라 사 입은 적이 없어 어떤 옷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사주는 옷이 내 눈에도 보기 좋았고 그냥 주는 대로 입고 먹고 마셨다. 그러니 음식을 직접 해봤을 리는 만무하고 옆에서 음식 하는 엄마를 도와준 적도 거의 없다. 엄마는 집에서 손에 물 묻히면 시집가서도 고생한다며 두 딸을 곱게만 키우셨다. 엄마의 그 희생과 사랑이 너무 감사한 한편 엄마의 세심한 케어와 사랑을 응당 당연시 여기며 손하나 까딱 않고 살아온 이전의 나에게 야유를 보내고 싶다.
그나마 이제라도 홀로서기를 하며 여태껏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님의 보살핌에 대한 감사함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생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모른다. 물론 이걸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서툴겠지만 계속 틀리고 망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볼 작정이다. 음식이든 홀로서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