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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혈혈단신 살아남기(33)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아.

by 지오바니

2006년 가을


이제 어느덧 2년 차에 접어든 학교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점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은 유지하며 무사졸업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영국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상대방이 본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고 그 부분으로 본인이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서슴지 않고 친한 척을 한다는 것! 처음엔 기회주의자인가? 이 갑작스러운 들이댐은 무엇이지?라고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지만, 편입생인 내 입장에서는 설혹 그 친근함이 계산된 것이라 하더라도 손해 볼 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프로젝트를 하게 된 Digital 과목이 내가 이 전 학교에서 경험했던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되자, 평소에는 대면대면하게 굴던 아이들이 갑자기 맥주 한잔 하러 가자며 살갑게 굴기 시작한다. 속이 뻔히 보이긴 했지만 매번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출근을 해야 했던 터라 어렵게 주어진 사교의 시간이 싫지 않다. 이렇게 몇 번 얼렁뚱땅 그 아이들 틈에 끼여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그 아이들의 개별 프로젝트를 전부 서포트 하게 되었다. 나에게 추가 점수가 부여되는 것도 아닌데 각각 개별로 테스트를 진행할 때 직접 옆에서 지원을 해야 하는 아이들만 해도 5명이 넘는다. 이러다 정작 내 과제는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간곡히 부탁하는 아이들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 아이들의 과제를 도우며 조금씩 친해지자 대부분의 학과 친구들과 오며 가며 인사도 하게 되고 몇 마디 대화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과 아무리 가까워진다 하더라도 생김새가 비슷한 아시안 친구들만은 못하다. 서로 완벽하지 못한 영어로 대회를 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점이 일단 서로를 편안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온 친구들은 언제나 조용하고 크게 튀는 법이 없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언제나 나이스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과의 사이에는 묘한 벽이 있는 느낌이다. 일정 정도 이상은 더 다가가지 못하겠는 느낌이랄까. 너무 깍듯해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홍콩 친구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국에서 교육을 받아서인지 이곳의 생활에 괴리감이 없단다. 그리고 딱 봐도 부잣집 딸내미임이 분명한 이 친구는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감이 넘친다. 영국에서 태어나 얼굴만 동양인인 한 중국계 친구는 수줍음이 많다. 영어가 완벽해도 그 역시 생김새가 비슷한 우리들과 어울리는 것이 마음 편한 듯하다. 그런데 우리 그룹에 동양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스 출신의 찬구도 한 명 있다. 긴 갈색 장발의 곱슬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아테네에서 왔다는 이 친구는 아버지가 영국인이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한다. 성격이 좋고 쾌활한 데다 유머러스하기까지 해서 참 좋아하는 친구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고 눈에 띄는 친구는 따로 있다. 바로 Jenny다. 그녀는 나이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이미 사회생활을 좀 하다가 들어온 친구여서 나와 비슷한 또래일 거라 짐작하고 있다. 나이도 있고 사회생활도 한 터라 어디서든 리더십이 있다. 수업에서 계속 같이 만나는 일이 많다 보니 어느새 그 아이를 경쟁자 같은 형태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전혀 내가 의식되지 않겠지만 나는 그와는 반대로 어디서나 그녀를 주목하게 된다. 그녀가 어떤 수업을 듣는지, 어떤 아이들과 어울리는지, 수업태도는 어떤지 일거수일투족에 자꾸만 관심이 간다. 아직도 엉성한 내 영어와 간신히 수업을 따라가는 내 학업 성취도를 생각하면 그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이가 있건만 비슷하게라도 따라가려는 심리가 내 경쟁심을 일깨운다. 그렇다 보니 Jenny 앞에만 서면 모든 것이 거 부자연스러워진다. 영어도 더 안 나오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 반, 그녀를 이기고 싶은 마음 반이 합쳐져 아주 복잡하다.


그런 그녀가 그 Digital과목 프로젝트에 나와 함께 팀을 하고 싶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언제나 깍듯하게 나이스하게 날 대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어색하기만 했던 우리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진짜로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신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와 함께 다니는 친구 하나와 함께 셋이 맥주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던 때였다. 대화 중에 알아듣지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 단어를 말하며 그 둘은 서로 눈짓을 보내며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난 모르는 단어에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단어는 염색체라는 단어였고 한국인은 서양인과 다른 염색체를 가진 게 아니냐며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를 놀린 거였다. 그때의 그 씁쓸함이란...


그냥 악의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너무 호감을 갖고 있던 아이에게 비웃음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많이 상했다. 그리고 그 후로 그녀를 향한 일방적인 선망의 마음은 그만 접어두기로 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소수인종이라는 내 피해의식이 지나치게 발동된 걸 수도 있지만 이미 상해버린 마음을 되돌릴 길은 없다.


이럴 때면 아무리 영어를 공부하고 문화에 익숙해지려 발버둥 쳐도 깨질 수 없는 벽이 날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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