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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혈단신 영국에서 살아남기(36)

언덕에서 자동차 밀어봤어요?

by 지오바니

2007년 초여름


얼마 전 내게도 차 다운 차가 생겼다. 내게 영어 과외를 받던 신학 대학원 학생분이 한국에 귀국하며 과외비 대신 주고 간 차다. 슈마라는 한국 브랜드의 차인데 차의 왼쪽 부분이 어딘가에 크게 긁혀 찌그러지긴 했지만 원래 갖고 있던 프랑스산 올드카에 비하면 내겐 거의 신차급이다. 파워핸들에 오토기어, 창문도 자동으로 내려간다! 프랑스산 올드카는 수명이 다 한걸 알았는지 최근에 엄청 삐걱대고 연비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고: 28화에 프랑스산 올드카를 갖게 된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 날은 분명 주유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엔꼬가 나는 바람에 식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유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차가 멈춰버렸다는 것. 그러나 급유라인이 닿지 않아 결국 뒤에서 차를 밀어야 했다. 원래 영국 사람들은 양보가 몸에 베어 있어 클랙션을 잘 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뒷 차들이 얼마나 빵빵 대던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식은땀이 났지만 그마저 주유소가 아니었다면 또 돈을 들여 사람을 불러야 했을 테니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동차 보험을 아주 기본적인 '제삼자 보장'만 들어놓은 상태(자차보험이 없고 상대방 차만 보상되는)라 긴급 출동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어느 날은 학교를 가려고 나왔더니 바퀴가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 사람을 부르면 또 돈이니 바로 옆 블록에 있는 카센터로 직접 이동을 하기로 했다. 펑크 난 바퀴지만 몇 백 미터쯤은 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너덜거리는 바퀴를 끌고 도로를 나섰다. 하필 긴 신호에 걸려서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옆 차에서 빵빵 거리며 창문을 내리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의 한 아저씨가 너 바퀴 펑크 난 거 아냐고 물으며 아래쪽을 가리킨다. 난 쿨하게 '나도 알아, 지금 카센터 가는 중'이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차가 금방이라도 멈출 것 같아 엄청 긴장이 되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에 적어도 남에게는 태평한 척하고 싶었다. 그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엄지 척을 하곤 사라졌다. 또 어느 날은 친구가 이사를 한다며 차를 빌려갔다. 물론 낡디 낡은 차지만 내게는 소중한 물건이라 빌려주면서도 뭔가 께름칙 하긴 했다. 아니다 다를까 운전이 서툴렀던 그 친구는 그나마 멀쩡했던 뒷 범퍼를 찌그려트려서 가져왔다. 친구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어차피 오래 못 탈 차 고쳐 내라고 방방 뜰 수도 없고... 한동안 속상한 마음을 그냥 꾹 삼켜야 했다. 이렇게 내 속을 많이 썩인 아이지만 그래도 한동안 내 발이 되어준 이 파란색 고철을 폐차할 때는 많이 섭섭했다. 게다가 분명 돈 되는 고철이 꽤 많이 나올 텐데도 폐차장 아저씨는 시치미 뚝 떼고 한 푼도 안 주고 서류 하나 띡 던쳐준채 쌩 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목구멍까지 가격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 치밀어 올랐지만, 역시나 소심한 나는 끝끝내 한 마디도 못 하고 파랑이를 그렇게 떠나보내야만 했다.


슈마는 왼쪽 몸체가 많이 쓸려 흠집이 난 것 빼고는 전체적으로 너무나도 멀쩡했다. 금색 슈마를 끌고 처음 학교에 가던 날, 여전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비로소 튀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게 묻어갈 수 있는 차를 타고 있다는 사실에 혼자 가슴이 벅찼다. 에어컨은 또 얼마나 시원하던지. 영국의 여름은 건조하고 시원하다 못해 쌀쌀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차들이 굉장히 많다. 대부분의 차들이 수동기어에 에어컨이 없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역시 한국사람이 몰던 우리 슈마는 오토기어에 에어컨도 빵빵해서 차를 탈 때마다 뭔가 급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날 마음만은 부자로 만들어 준 슈마가 어느 날 말썽을 일으켰다. 바로 배터리가 방전된 것.

하필 친구네 집에 가던 길이라 우리 집 옆 카센터에 가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고 이 낯선 동네에서 내게 자신의 배터리를 연결해서 시동을 걸게 만들어줄 사람은 당연히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부르자니 인건비가 이 차 값보다 더 나올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도움을 요청하던 때 누군가 던진 한마디. "차를 언덕에서 밀며 시동을 걸어봐, 차가 움직이는 힘으로 시동을 걸 수 있을 거야".

나름 신식 자동차였지만 여전히 전자식이 아닌 전기식 자동차였던 슈마에게 통할 법한 방법이었다. 때 마침 운명처럼 저 앞에 내리막길이 보였다. 내 전화를 받고 달려 나온 친구와 함께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차를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밀었다. 그러나 막상 운전석에 앉으니 혹시 시동이 안 걸려서 차를 멈춰 세우지 못하고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옵션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 차를 카센터까지 끌고 가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기어를 중립에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 차가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점점 속도가 나는게 느껴졌다.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고 열쇠를 잡은 손이 떨려왔다. 속도가 꽤 났다고 생각한 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 키를 돌렸다. 그때 시동이 걸리며 우렁차게 들리는 엔진소리에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렇게 친구집에 가선 2시간 내내 시동을 켜 놓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가득 채워놓은 기름덕에 카센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사는 건 이렇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달픈 일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참여해 본 런던 한인 교포들 모임에 가니 다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일제 대형차를 몰고 나타났다. 말로는 집에서 도움 안 받고 일하며 공부하는 나를 대단하다 추켜 세웠지만 은근히 날 괄시하는 뉘앙스를 내가 눈치 못 챌리 없었다. 그 이후로 교회사람들 외에 한인 교포들이 모이는 곳엔 절대 가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땐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자랑스럽다가도 힘이 쭉 빠진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졸업장을 받으면 내 인생이 달라지긴 할 건가.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되어 버릴까 봐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는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20대의 이 고된 시간이 훗날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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