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양할게요.
2007년 여름
지난봄 마지막 학기의 등록금 납부 마감일이 지나도록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한 번에 천만 원이 넘는 돈을 계속 마련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4년 차에 접어든 영국 생활에 완벽 적응한 몸과 마음은 이미 풀어질대로 풀어져있었고, 항공사에서 일하며 뒤늦게 여행에 눈을 뜬 탓에 예전처럼 돈을 많이 모으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초심을 잃은 것이다. 매주 방세 걱정에 조바심을 내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매너리즘에 빠진 게을러진 내가 있었다. 그렇게 학비 입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어느 날 학교에서 최후통첩을 받았다. 해당 기일까지 납입을 하지 않으면 학교 이메일 계정이 정지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 한 학기만 다니면 졸업인데 이제 와서 그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통장엔 겨우 학비의 절반 정도를 커버할 만큼밖에 없었고 한국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4년간 엄마가 비상시에 쓰라며 준 신용카드도 정말 급한 한 두 번을 제외하고는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목돈을 얘기하자니 너무 면목이 없었다. 끝까지 전부 내 힘으로 하고 싶었는데 무언가 실패한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정말 씁쓸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막다른 골목에서 손 잡아줄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도움을 받아 겨우 학비를 내고 마지막 학기를 가까스로 마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정말 불가능할 것 같았다. 맨몸으로 이 먼 땅에 와서 먹고사는 것조차 힘겨운 시기를 지나 이제 목표했던 날이 성큼성큼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유급 없이 무사히 제때 졸업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커리어 플랜 따위는 없다. 그저 목표한 것을 이루고 끝내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당장은 먹여 살려줄 직장이 있으니 크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회사에서도 나름 일잘러로 인정받고 있는 중이라 거의 대부분 비즈니스 데스크에서 일을 한다. 승객수도 적고 손님들이 젠틀해서 다들 선호하는 위치다. 난 업무에 완벽 적응한 이후로는 짬이 날 때마다 제3외국어를 공부한다. 요즘엔 항공사 승객 중 일본인 비율이 많아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를 공부 중이다. 매일 데스크에 책을 펴놓고 있으니 어느 날 체크인을 하던 영국 손님들이 한 마디 건넨다.
"영어 공부 하는 거군요?"
"아니요 일본어인데요!"
버젓이 런던에 있는 외국 회사에서 일하는 걸 보면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은근히 짜증이 났나 보다. 나도 모르게 좀 호전적인 말투로 대꾸해 버렸다. '모든 외국인들이 영어만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인들은 영어 밖에 못하면서!'라고 속으로 핀잔을 주며 나 스스로도 영문 모를 심술이 났다.
사실 얼마 전 영국회사에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다. 좀 규모가 있는 여행사인데 비행기 티켓 판매 자리였다. 비행기 티켓팅은 나름 복잡한 티켓팅 시스템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한번 배워놓으면 이 업계에서 계속 쭈욱 일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전문직종으로 취급받는다. 게다가 런던 시내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어 진짜 런더너가 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만한 회사였다. 날 눈여겨보던 이 회사의 대표가 내게 면접을 제안했다.
얼마 전 시행된 법에 의해 영국에서 정규 대학이나, 대학원을 마치면 취업을 하지 않아도 2년간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비자 없이 취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니 외국인 졸업생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2년 후엔 물론 회사에서 취업 비자를 후원해줘야 한다. 한 마디로 2년간 회사에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소리다. 비자 문제가 아니더라도 취업 시장에서 구직자는 어차피 약자다. 이 모든 것을 갖춘 나는 모든 조건에서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던 이 여행사 대표는 내가 일을 잘한다는 걸 알고 먼저 면접을 제안했지만 막상 면접에서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연봉을 제시하며 나의 반응을 살폈다. 2년 후 자신이 비자 서포트에 써야 할 비용을 운운하며 처음부터 날 싸게 부려먹으려는 의도가 눈에 보였다. 아마도 본인은 내가 영국에 살고 싶다면 이만한 직장이 없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영국에 정착하고 싶어서 온다. 그리고 물론 내게도 간절하게 영국 정착을 바라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값싼 비행기값 덕에 한국을 자주 오가며 나의 향수병은 점점 커져만 갔다. 또한 여기서 더 늦어버리면 나이에 민감한 한국의 취업 시장에 들어가고 싶어도 하는 수 없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대로 몸은 편하지만 단순 반복 업무로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은 이 일에 안주하기에는 난 너무 젊다!
게다가 이 얌체 같은 영국인 대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난 영국을 제2고향이라 칭할 만큼 사랑한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치는 그들의 우월감이 가끔씩 드러날 때면 난 결코 그걸 마음껏 내세우도록 내버려 두지 못했다.
그의 취업 제안을 거절한 후 공항에서 처음 맞닥뜨린 날, 난 분명히 그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약간 아니꼬우면서도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당연히 제안에 응할 줄 알았다'며 졸업후 계획이 뭐냐고 물었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하며 짜릿한 통쾌함에 의기양양해졌다. 그러자 지난 세월 항상 약자였던 내 처지가 조금은 위로 받는 것만 같았다. 그 승리감에 고무된 나는 아직 아무런 계획도 거창한 꿈도 없지만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I will go back to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