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혈혈단신 살아남기 연재를 마무리하며
2025년 6월 26일
지금은 새벽 3시 50분. 스위스 제네바입니다. 잦은 출장에도 시차적응은 좀처럼 쉬워지지가 않네요. 그러나 오늘은 그 덕분에 새벽의 고요한 적막감을 오롯이 누리며 이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먼저, 부족한 제 글에 꾸준히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다분히 제 삶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이었지만 단 한 분이라도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된다는 것이 이 연재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격상 무엇이든 하고 싶으면 일단 시작하고 보는 터라 이번 연재도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시작하는 글에서 언급했듯이 영국생활 초기에는 일기를 엄청 열심히 썼거든요. 그러나 영국생활이 익숙해지는 순간부터는 매일 제 맘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일기장은 금세 고갈되었고 모든 이야기를 순수하게 제 기억에 의지해서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라는 건 참 대단하고 신비하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면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그날 그 시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911 테러나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순간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처럼요. 제겐 영국에서의 시간이 그랬습니다. 글을 이어가며 영국에서의 5년 전체가 제게는 큰 사건과도 같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상 연재를 마치고 보니 빼먹은 이야기가 많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특히 제게 정말 중요하고 고마운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담지 못한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외국인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 한국인 분들의 실명을 담지 않은 건 현재는 연락이 끊긴 분들도 있고 제가 기억하는 대로 쓰인 글에 그분들을 동의 없이 그려내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왕 제 인생 기록을 시작했으니 귀국 후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른 연재를 이어가 볼까 합니다. 약간의 재정비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40주의 여정에 동행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