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휘몰아치는 오후, 이호테우해변의 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 한잔에 몸을 녹이고 있다.
서울엔 큰 눈이 온다던데 제주는 바람의 기세에 비해 아직은 새파란 하늘이 눈을 떨어뜨릴 것 같진 않다. 다만 누가 바람 많은 제주 아니랄까 봐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이때에 맹렬하게 돌진해오는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들의 용기에 감탄할 뿐이다.
평일 낮, 거센 바람까지 손님을 몰아낸 탓일까? 다른 손님들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손 발이 노곤 노곤해질 때까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호테우해변은 우리 가족에게 추억이 많은 곳이다. 2년 전 여름엔 이 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시끌벅적한 여름밤을 마음껏 즐겼었다. 달이 떠오를 때까지 모래밭에 앉아 모래성 쌓기에 삼매경이던 아이의 모습과 함께 모래성을 쌓고 놀아주던 꼼군.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의 모습까지...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래,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그랬었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해변 축제장에서 심장까지 꽝꽝 때려대는 스피커 사운드와 몰려드는 피서객들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아 헤맸었는데 이젠 어딜 가도 사람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2년 전 이호테우해변 축제 그 쓸쓸함의 무게에 눌린 듯 언니도 나도 한참을 말없이 창 밖 너머 바다만 바라본다. 우리는 이 곳에서 각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따로 또 같이 한 곳에 있어도 서로가 이 순간을 진정으로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참 소중하다.
겉으로 드러내어 말을 하진 않지만 어쩌면 둘 다 이 시간을 통해 마음속 깊이 숨겨놓은 각자의 고민과 걱정을 꺼내어 곱씹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쁘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에 익숙했던 나...... 갑자기 나타난 쉬어가는 정거장에 내린 이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나의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어떤 대책이나 계획 없이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이다. 느닷없이 닥친 이 쉼의 무게를 어떻게 짊어져야 할지 저 바다에 답이 있는 양 애꿎은 바다만 한참을 바라본다.
그저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이 나 만은 아니라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면 이기적인 걸까.
오늘은 이런저런 이유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노래로 위로를 건네고 싶다.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길은 아직 머니깐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우리는 이미 오랜 먼길을 걸어온
사람들 이니깐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어느 곳에 있을까 그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 채 다시 일어나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이적, 같이 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