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가 되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추억 쌓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쉽게 표가 난다더니, 두 사람이 있던 공간에 하나만 남게 되니 그 허전함이 꽤 크다. 언니가 머물던 방안을 휘 둘러보다 언니가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 향이 여전히 남아있음에 괜히 마음이 심란해져 얼른 방문을 닫고 돌아 나왔다.
혼자 고립되어 있던 일주일 후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유쾌했던 일주일. 그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인연을 이어왔던 우리는 그 일주일 동안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고 가끔씩 어색하게 말을 높이며 애매한 톤을 유지하던 우리의 대화는 이제 아주 편한 친구사이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둘만이 간직하게 된 추억들이 생겨난 것이 참 좋다. 함께 올랐던 오름들과 그곳에서 마셨던 제주의 맛있는 공기, 맛집을 찾아다니며 얼굴을 마주 보고 음식을 먹다 감탄하던 순간들, 셀카로는 가질 수 없는 멋진 독사진을 서로 찍어주고, 잘못 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올레길 풍경에 "너무 좋다!"를 연발하던 기억들.
언니와 나는 이제 오랫동안 곱씹으며 안주삼아 얘기할 추억들을 한 아름 안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풍성한 정서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계획에 없던 뜻밖의 시간이 나의 인생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는 것에 한없이 감사하다.
언니를 배웅한 뒤 허한 마음을 떨치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마침 날씨는 무거운 겨울 외투를 벗어던져 버릴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 10여 년 전 제주에 살 때 주말마다 혼자 찾아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익숙한 장소, 송악산으로 향했다. 집에 있는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만큼 좋은 날씨 탓에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찼고,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 송악산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처음으로 송악산 둘레길 완주에 나섰다. 이제 내 사진을 찍어줄 이도, 쉴 새 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보며 내지르는 감탄사에 맞장구를 쳐 줄 사람도 없지만 둘레길이 이끄는 대로 묵묵히 한 발 한 발 내디뎌 본다.
다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순간이 박제되어 영원히 내 곁에 남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다시금 깨닫는다. 무엇이든 내 곁에 영원히 머무른다면 그 순간 느꼈던 행복도 곧 익숙함에 갇혀 퇴색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오히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장식된 한 컷 한 컷이 그 추억을 꺼내보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인생이 더해져 그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지속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