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버릇처럼 오늘 날씨를 검색한다. 한 달 내내 루틴이 되어버린 날씨 확인하기.
'아차... 나 지금 제주도에 있는 거 아니지'
제주에서의 하루는 날씨가 좌우한다. 어제처럼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실내 관광지나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아다녔고, 해가 좋아 어디서든 한라산의 매끈한 얼굴이 보이는 날이면 오름이며 올레길을 찾아 부단히도 걸었다.
이제 그 시간은 잠시 접어둘 때다.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거실로 나가니 따뜻한 온기가 날 맞는다. 일찍 일어나 벌써 아침식사를 마치신 부모님이 우리 세 가족을 위해 치우지 않은 반찬들도 눈에 띈다. 아침임에도 한 상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찬들을 보니 비로소 내가 집에 왔음이 실감이 난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이 반가운 우리 엄마는 어제 먹고 남은 밥 대신, 아침에 새로 한 김 모락모락 나는 밥을 퍼서 맛있게 무쳐놓으신 제철 봄동과 함께 내 앞으로 밀어 놓으신다. 아침밥이 이렇게 맛있던 거였나. 한 달 내내 시럽도 넣지 않은 오트밀을 먹으며 간신히 아침을 때웠던 지난날을 보상받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역시 엄마가 해 준 밥이 제일 맛있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블로그에 리뷰 할 책도 마저 읽어야 하고 오늘 저녁에 있는 원격수업 예습도 해야 한다. 그리고 벼르고 벼르던 동네 체육문화센터에 수강신청도 할 거다. 당당히 평일 한낮 시간에 운동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하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었을 일들이 내게는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진다. 해 보지 못했기에 더 하고 싶고 경험하지 못했기에 더 크고 좋게 느껴지는 그 경험이 막상 현실이 되면 아마도 곧, 별 것 아닌 일이 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평소 꿈꾸던 것들이 실현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2박 3일, 3박 4일 이런 짧은 일정에 매여 한 시도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지난 시간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이번 안식 여행에서는 엉덩이가 무감각해질 때까지 진득하게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들었다. 내일이 계획으로 가득 차 오늘을 바쁜 마음으로 보내지 않아도 되었고 점심식사 후 쏟아지는 식곤증에 마음 편히 항복도 해봤다. 그냥 발길 닫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제주를 느끼면서 꿈만 꾸던 소망이 현실이 되는 희열을 마음껏 맛보았다.
이런 경험이 내게 가져다준 건 마음의 여유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다시 집에 온 나는 이전보다는 훨씬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지닌 새로운 버전의 내가 되었다.
이 마음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주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을 간간히 꺼내 보며 내 앞에 주어진 일상을 잘 살아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