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북적이는 설 풍경과는 진작에 멀어졌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설 차례상을 차린다. 3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라 한 번도 제사나 차례를 지내본 적이 없던 꼼군은 나랑 결혼한 직후부터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와 명절 차례를 도와주고 있다.
함께 지낸다고 말하기에는 나나 꼼군이나 절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으니 아버지가 절차대로 의식을 치르실 수 있도록 옆에서 수발을 든 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난 엄마와 상을 차리고 꼼군은 장인어른 옆에 앉아 술을 따른다. 결혼 한 지 10년이 되니 차례상에 올릴 술을 예법에 맞게 세 번에 나눠 따르는 그의 손길이 제법 익숙해 보인다.
코로나로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며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운이 좋게도 명절 음식을 할 필요가 없는 집에 시집을 간 덕에 이제껏 명절 증후군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모임 금지로 오히려 착한 형님과 귀여운 조카, 맘씨 넉넉한 고모를 못 봐서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일 년에 몇 차례씩 모든 가족이 모여 단골 식당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전부인 우리 시댁 모임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난 음식을 먹는 기분 좋은 행사다.
몇십 년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족을 이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 살아온 가정환경과 분위기의 유사성인 것 같다. 다행히도 양가 모두 서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의 가풍을 지녔고 그 덕에 어느 쪽에서든 하던 대로 행동해도 어른들의 심기를 건드릴 일이 없으니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어찌 시월드가 마냥 좋기만 하겠냐마는 난 시월드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아우라가 적어도 내겐 너무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큰 갈등 없이 살아가고 있고 그에 항상 감사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번 모임 금지로 내게 벌어진 신상 변화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숨길 것도 없지만 구구절절이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안쓰러운 눈빛을 받아내야 하는 순간을 피할 수 있게 된 건 잘된 일이다.
이렇게 아쉬움 반 다행스러움 반의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온라인 선물과 함께 새해 덕담을 보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가까운 설이 되길 바라며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