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
나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심지어 피곤함이 내가 일을 열심히 했다는 훈장이라도 되는 양 집에 돌아왔을 때는 피곤한 것이 당연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어쩌면 하루의 절반을 회사에서 보내며 일과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치이다 보면 피곤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계속 이렇게 피곤한 채로 살 수는 없는 법. 피로가 폭력이라는 한병철 님의 정의를 끌어다 대지 않아도 현대인들은 이미 누적된 피로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쉽게 무기력감을 느끼고 아무런 의욕도 느끼지 못하는 삶이 내 주위를 맴돌며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걸림돌이 되었다.
어쩌면 잠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저 나락으로 떨어져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10여 년을 살아온 내게 '지금 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긴급한 경고가 머릿속에 울린 건 결코 그냥 지나가는 우연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경고를 받아들인 나는 지금 제주에서 비현실적으로 퍼붓고 있는 폭설 속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피곤함을 내려놓겠다며 이 곳에 왔어도 장소가 바뀐 것 만으로는 할 줄 모르는 것을 갑자기 할 수 있게 되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쉬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잘 쉬는 법'을 검색하니 다양한 결과들이 나온다.
잘 쉬는 10가지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책이 검색되기도 하고, 나처럼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친절하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블로그가 검색되기도 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방법들에는 이런 공통점이 있다.
진짜로 잘 쉰다는 건 [머리를 비우는 것]이라는 것.
흔히 쉰다는 것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주말 아침의 늦잠이나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 24시간 정주행 같은 건 오히려 신체 리듬을 깨뜨려서 몸을 더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기에 하루 종일 넘쳐나는 정보의 물결 속에서 한 손에는 핸드폰, 다른 손에는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며 끊임없이 필요하지도 않은 정보를 받아들여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건 번아웃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런 습관에 익숙해져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엇이든 눈으로 봐야 마음이 안정이 되는 건 아마도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리고 이럴 때 정말 필요한 건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들 중 필요한 것은 남기고 버려야 할 것은 제때 버려서 우리가 숨 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쉬는 법의 골자다.
그렇게 숨 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명상하기, 운동하기,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 혼자 있기, 산책하기, 목욕하기, 바보상자 TV를 보며 머리 비우기, 몸을 계속 움직이기 그리고 때론 아무것도 안 하기......
위 방법들 중 의도치 않게 3일째 이어진 폭설로 고립된 나는 혼자 있기를 실천 중이다. 이렇게 대화 상대가 나 혼자 뿐인 상황이 여러 날이 되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나도 몰랐던 나의 행동 패턴, 내가 배고픔을 느끼는 시간,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것, 무섭다고 느끼는 것 등. 이렇게 나의 행동과 생각들을 곱씹어 보게 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항상 밖의 위험을 감지하며 외부의 자극에 대응하느라 바빴던 나의 더듬이가 이제 내 안을 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나에게 집중하며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나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쉬는 법을 실천해 가다 보면 1년 후엔 조금은 더 행복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인생을 즐기면서 내 주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