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생명의 위대함

by 지오바니

하루 종일 창가 옆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차도 마셨다. 잊지 않고 다음 주 개강하는 과목 예습도 하며 나름 알차게 이 고립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그러다 문득 창밖으로 쉼 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니 창문 밖과 방안의 괴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꼭 커다란 화면으로 겨울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 한참을 '눈멍'을 했다. 엊그제는 난로 앞에 앉아 불멍을 했는데 오늘은 조금 더 큰 화면으로 시시때때로 거세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니 훨씬 더 스펙터클 하다.


방안에 잔잔히 흐르는 재즈 선율과 창밖 저만치서부터 눈보라가 몰려오는 굉음의 부조화가 자꾸만 그 차이를 더 크게 벌린다. 런데 그 느낌이 싫지가 않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이렇게 가만히 똑같은 곳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기 시작했다. 3년 전 처음 집을 지을 때 안방 앞에 심었던 내 허리춤만 하던 다정큼나무는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키가 커졌다. 이 세찬 바람에 가지가 부러질 듯 흔들려도 이쯤은 끄떡없다는 듯 튼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끄는 또 한 녀석. 몇 달 전 마당 한 구석에 꽂아 놓은 나뭇가지. 정원에 굴러다니던 나뭇가지 하나가 있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팔목보다 가는 그 아이를 돌담 옆에 꽂아놓았었다. 몇 달 후에 와보니 그 아이가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꽤 여러 개의 가지를 옆으로 내어서 참 신기했다. 지금 보니 무슨 나무인지 이름도 모르고 물 한번 준 적이 없는 그 아이가 돌담 키만큼 커졌다.

거센 바람에 아직 약한 뿌리가 흔들리는지 옆으로 살짝 기울어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눈보라가 잠시 누그러진 틈을 타 큰 돌 하나를 뒤쪽에 궤어주었다. 더는 넘어지지 말라는 응원을 담아. 내 응원이 그 아이에게 닿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큰 돌이 완벽히 쓰러지는 것은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하다.


저렇게 뿌리도 약하고 병이 든 듯, 가지 색도 푸르스름해진 저 나무가 왜 이렇게 눈에 밟히는 걸까. 아픈 손가락처럼 그 옆에서 늠름하게 쑥쑥 자라는 큰 형님 같은 나무보다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겨우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나무에게 더 눈길이 간다. 이는 아마도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미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만큼 살아내 준 것에 대한 기특함과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감탄 때문일 것이다.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식물도 홀로 이 추위와 바람을 견뎌내고 있는데 나는 이 따스한 방 안에 머물며 아무것도 불평할 것이 없다.


저 아이가 이 추위를 잘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으면 쑥쑥 자라라고 맛있는 물과 비료를 듬뿍 줘야지!라고 마음먹는다.


제발 살아남아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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