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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r 08. 2021

최고의 선택

믿을 구석이 도시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3주 만에 다시 제주 가는 짐을 싸고 있다.

이번에는 한가롭게 쉬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에 눈 때문에  했던 벼르고 벼르던 돌담정리하고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정화조 청소도 하러 간다. 우리 동네엔 정화조 청소 업체가 2개가 있다. 이맘때면 예약이 꽉 차 항상 빨리 와 달라며 사정을 해야 한다. 제주에서 무슨 일을 할 때는 너무 성급하게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 내 성질만 버릴 뿐이다. 혹시 몰라 두 곳다 예약을 했는데 전부 정확한 일자는 얘기해 주지 않고 "가게 되면 전화하쿠다!" 가 내가 얻어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이다.


 돌담 작업은 기존에 있던 돌담을 허물고 옆 자투리 땅을 평탄하게 한 다음 그 땅까지 포함해 다시 돌담을 쌓는 작업이다. 봄이 오면 더 넓어진 마당에 예쁜 동백나무를 심어 바람도 막고 외부에서 마당 안까지 뻥 뚫린 시야도 가려줄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다.


 열흘도 안 되는 기간이지만 제주는 언제나 내게 설렘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제주를 다녔던 아이 이제 제법 자기 짐을 직접 챙기는 이 야물다.


 혹시나 하고 내일 날씨를 확인해 보니 호남과 제주지방에 많은 눈이 온단다. 역시 눈은 날 따라다니는 게 맞았다! 지난번처럼 비행기가 결항이라도 돼서 아이와 둘이 공항에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한 보따리다. 지난달에 눈에 호되게 한 이후로는 이제 흰색만 봐도 지긋지긋하다.


 아이는 혹시 엄마가 겨울왕국의 엘사냐며 아이다운 농을 던지고 제주 지인들도 한 마디씩 '눈을 몰고 다니니 눈의 여왕 맞다'며 결국 이렇게 새로운 별명을 하나 얻었다.




 3주 만에 온 집은 한 달 전 찍은 사진 복붙 한 듯 또 하얀 눈에 덮여있다.

얼른 난로를 켜 12도까지 내려가 있는 집안 온도를 덮이고 환기도 시키며 집안 곳곳에 사람 냄새를 힌다. 목조주택인  우리 집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나무향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설었던 이 냄새가 이젠 마음을 편안하게 해 고 제주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집이 준공한 지도 만 3년이 넘어간다. 처음엔 숨을 쉬는 나무집에 적응을 못해 집안 곳곳이 갈라지는 걸 보곤 부실공사에 사기를 맞은 것 아닌가 마음을 졸다. 또 온 동네 개들이 마당에 들어와 한 번씩 영역표시를 하고 가는 바람에 부랴부랴 대문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마을 안쪽에 사는 분이 우리 집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우리 집에 사는 개가 자기네 집 양을 물어 죽였다며 따지고 들었다. '우리 집엔 개가 없는데...' 하도 온 동네 개들이 우리 집에서 뛰어 노니 우리 집 개인 줄 아셨나 보다. 하지만 사실 난 그 보다 우리 동네에 양이 산다는 사실 더 놀랐다. 양이 사는 동네에 있구나. 우리 집이.


 시간이 흐르며 이 집에도 이제 정이 듬뿍 들었다. 물에 이렇게 애정을 갖게 된 건 취직 후 생애 처음 샀던 새 차 (지금은 열세 살이나 먹어 오늘내일한다.) 후로 두 번째다. 어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집을 지었다며 부러움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지만, 난 서울에 전세도 못 얻을 돈으로 제주에 집을 짓는 선택을 한 것뿐이다. 땅 사고 집 짓는데 들어간 돈을 다 합쳐도 고작 서울 시내 방 한 두 개짜리 허름한 빌라의 전세를 얻을 수 있을 정도다. 아파트는 물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돈이고. 이런 선택으로 난 제주에 우리 가족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 세 가족의 성향을 반영하여 직접 설계를 하고 (물론, 공간 구성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는 소리다.) 마음에 드는 도면을 찾기 위해 거짓말 좀 보태 1000장도 넘게 도면을 찾아봤다. 인테리어를 맡길 돈이 없어 참고하기 쉽고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사진도 몇 장을 봤는지 모르겠다. 허허벌판이었던 그 땅에 콘크리트가 부어지고 골조가 올라가는 모든 장면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아이가 태어나는 걸 지켜보는 마음과 비슷했던 것 같다. 꿈이 실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이러니 애틋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작은 집이겠지만 내겐 어릴 적 꿈꾸던 푸른 마당을 가진 드림하우스다. 이 집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도시에서의 내 삶도 생기가 넘쳤다. 제주에 내려갈 수 있는 날짜들을 꼽아 놓고 그 날이 오기만을 매달 기다리면 그 시간들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결승선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을 끝없이 달리는 기분이었다면 제주에 가는 날짜들이 달력에 나타난 이후론 그 날짜까지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시간이 휙휙 잘도 지나갔다.


 이 집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또 있다. 이도 저도 다 싫으면 그냥 내 집이 있으니 제주에 내려가 밀감이라도 따면서 벌어먹고살면 되지 않겠냐는 믿을 구석이 생긴 거다. 이런 심리적 안정감이 외려 도시생활을 조금은 더 견딜만하게 해 줬다.


 전히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집에서 땀나도록 정성스레 쓸고 닦으며 그 고마운 마음을 전해 본다. 일을 핑계로 내려왔지만 제주는 이 집 덕에 언제나 내게 쉼 그 자체이다.


벼르던 돌담 공사를 드디어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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