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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Mar 09. 2021

쉼표를 만난 이유

끊어 가야 숨이 덜 차다.

 알람 소리에 번뜩 눈을 떴다. 벌써 제주에 온 지 4일 차.

1월 한 달을 이 곳에서 보냈더니 이제는 이 집이 정말 편안하다. 우리 집은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해발 400-600미터 고도에 있다. 이러한 고도가 혈류량을 증가시켜 혈액순환을 돕고 숙면을 취하게 해 준다는 얘기를 들어서일까? 우리 집에서는 정말 푹 자게 된다. 고요한 주변 환경과 좋은 공기, 그리고 맑은 물. 내가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다.


 내려오자마자 며칠 동안은 제주에 먼저 내려온 아이의 단짝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친구와 제주에서의 조우는 아이의 텐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고 새벽까지 마음껏 쿵쾅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며 마냥 흐뭇했다.  나처럼 주행이 설렘과 동의어가 될 수 있도록 울에서 할 수 없는 걸 이 곳에서는 가능하게 해 주고 싶었다. 아하는 친구와 밤늦도록 수다를 떨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맛난 것을 먹고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 것. 아이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엄마와 친구 사이에 누워 잠을 청하다 나직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나 너무 행복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이번 여행의 의미는 더 이상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렇게 보낸 3일 동안, 지난달에  혼자 눈 뜨던 침대에 아이와 누워 잠을 청다. 아침엔 내가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 소리에 몸을 뒤척이 눈을 채 뜨지도 못 하고 비몽사몽인 아이의 얼굴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이와 함께 있는 시간들은 날 더 용감하게 만들었고 더 어른으로 만들어줬다.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는 건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 같았다.

 그렇게 아이에 집중하다보니 혼자 있을 땐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빈 잔 같았다면 아이와 함께 하는 날은 미처 나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꽉  물려 쉼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  아이를 돌보며 종일 해내야 하는 일과를 하나씩 해내다 보면 내 안을 들여다볼 새가 없어 글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브런치 앱을 켜고 흰 바탕에 커서가 깜박거리는 것을 바라보다 이내 꺼버린 것이 도대체 몇 번인지 모르겠다.


 록 기쁘고 행복한 상태라도 내 마음이 밖을 향하고 있으니 내 안의 것들이 정리가 될 틈이 없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정보와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밀어내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숨이 차다.

 휴직 후 오랜만에 이런 날을 겪으니 그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난날의 내가 쓰러워진다. 잠시도 쉬지 않고 하루를 꽉 채워 보내려고만 했던 날들. 그렇게 해야만 잘 사는 거라고 믿어왔던 아집의 시간들이 이제와 생각하니 다 덧없다.


 어떤 문장이든 쉼표 없이 길어지면 숨이 차다. 그리고 때론 의미가 왜곡되기도 한다. 제주에서의 숨 가쁜 며칠을 보내며 다시금 내가 왜 지금 쉼표를 만난 건지 이해가 된다.


이제 한번 끊어가 줘야 할 때가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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