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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바니 Apr 09. 2021

제주의 하늘을 돌려줘

노란 유채꽃보다 더 누런 황사가 덮친 날

 암막커튼 뒤로 비쳐 드는 달빛이 너무 훤해, 순간 정원에 불을 켜 놨던가 하며 잠깐 착각했다.


 처음 제주집에서 머물던 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과 거실을 한가득 채운 달빛에 이게 생시가 맞나, 자꾸만 커튼을 들춰보며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었다. 방금 전까지 집 앞에 가로등이 없어 너무 캄캄해 죽겠다며 불평하던 꼼군도 대자연이 선사한 영롱한 조명 앞에선 조용히 입을 다물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사는 육지의 그곳도 변두리 시골로 따지자면 빠지지 않는 곳인데. 도시와 마찬가지로 심한 빛공해로 몸살을 앓는 밤하늘엔 인공조명을 이길 힘이 없는 애처로운 달과 별이 있을 뿐이다.

집 앞에 뜬 오리온자리, 내 폰으론 이게 최선이라 아쉽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밤엔 별 보러 낮엔 구름 보러. 깨끗한 공기 덕인지 구름도 낮게 떠다니는 듯하다.


 그런 제주에 오늘은 평소 먼지량의 40배가 넘는 황사가 덮쳤다. 가는 날이 장날인 건가. 비행기마저 황사로 코팅하고 그 파랗고 예쁜 제주의 하늘은 잿빛을 넘어 흙빛이다.

안개 낀 듯 뿌옇게 보이는 산방산

 제주도민들도 이렇게 심한 먼지는 생전 처음이다며 당황한 기색이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친한 언니도 '한 평생 제주에 살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는데' 라며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주섬주섬 챙기는 것을 보니 기분이 씁쓸하다. 휴직하기 전부터 봄이 오면 정원에 나무를 심겠다고 다짐을 하고 나무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내려온 나는 약간 배신당한 기분마저 든다.

화순 서동로 유채꽃

 그래도 유채꽃 구경은 기어코 해야겠다며 꾸역꾸역 찾아간 화순 서동로는 생생한 노란빛으로 그나마 서운했던 내 맘을 달래준다. 처음 제주에 내려와 정착했던 화순은 그 이름만으로도 정겹다. 화순 해수욕장 근처에 자리 잡은 오래된 빌라 1층에 세 들어 살던 나는 아침이면 신발 속에 들어 있던 '게' 들에 화들짝 놀라고 거짓말 조금 보태 내 주먹만 한 바다 바퀴벌레가 집 안에 나타나는 날이면 바퀴벌레 살충제 한 통을 다 쓰고도 그놈들을 잡지 못해 두려움에 하얗게 밤을 지새우곤 했었다.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들도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수 있나 보다.

 

 유채가 만발한 화순 서동로는 먼지 때문인지 이 좋은 날씨에도 관광객 한 명 찾아볼 수 없다. 인적 없는 그 길 위에 내려서 사진을 찍을 요량이었지만 먼지의 기세에 눌려 결국 나도 차 안에서 셔터만 몇 번 누르고 아쉽게 자리를 떠야만 했다.

 

 제주에 오면 공항에서 가장 먼저 하던 일이 눈을 감고 숨을 크 들이 마쉬는 것이었다. 부드럽고 상쾌한 공기가 콧속으로 스윽 들어와 폐와 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가끔씩 서울을 방문한 제주 지인들이 서울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 오래 못 있겠다며 서둘러 제주행 비행기를 타러 가 난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나도 제주에선 '공기가 정말 맛있다며' 감탄해 마지않으며 다녔었다. 오늘은 그 얘기를 차마 할 수 없어 우울한 날이다. 봄이 제주 곳곳에 속속들이 들어차 벚꽃은 절정을 지나는 중이고 유채꽃은 어딜 가나 만발인데 이 좋은 햇살에 창문 하나 열 수 없다는 사실이 꼭 감옥에 갇힌 듯 가슴을 짓누른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자행되고 있는 환경파괴와 그로 인해 가속화된 기후변화의 폐해로부터 제주섬도 자유로울 수 없을터. 이 작은 땅덩이에서 오염된 하늘을 함께이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내 마음도 미세먼지가 낀 듯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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