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된 지 어느덧 1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제껏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이 감염되거나 더욱이 그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영국에서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소천 소식은 더욱 비현실 적이다. 원래도 지병이 있으셨던 목사님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으셨다고 한다.
강단 있고 소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머나먼 타국에서 오랜 세월 꾸준히 목회 활동을 해 오신 목사님. 때로는 그 엄청난 카리스마에 기가 눌리기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한터라 그분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그의 남겨진 가족들이 떠오른다. 작은 개척교회였던 탓에 평생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던 목사님. 그런 교회를 운영하며 생계를 위해 하루도 일손을 놓을 수 없던 사모님. 그런 현실에서도 사모님의 끝없는 헌신과 강한 믿음에 뿌리를 둔 긍정의 힘은 항상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친구이기도 한 목사님의 큰 딸. 그녀를 떠올리니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녀 자신도 코로나로 인해 오랜 기간 휴직을 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왔기에 어떤 충격을 받고 있을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무슨 말인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SNS를 통해 무거운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몇 자 적어 보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마음을 보탤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이를 계기로 단톡 방에 모인 교회 사람들은 저마다 그와의 추억을 풀어놓는다. 모두들 타지에서 공부하랴 일하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목사님을 통해 배운 가르침이 큰 힘이 되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랬다. 어디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가족도 친척도 없던 그곳에서 만난 목사님과 그 가족들은 내게 가족이 되어 주었다. 학교 다니면서 일을 해야 했기에 하루 한 끼 많으면 두 끼, 그것도 샌드위치와 라면으로 해결하며 지냈던 유학생활에서 주일마다 먹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모님의 기가 막힌 손맛으로 차린 한국 음식은 내게 힐링 그 자체였다.
그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 가족이 아니었다면 5년 이란 세월을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를 핑계로 날라리 신자가 되어 언제 예배를 드렸었는지도 까마득하지만 내 믿음의 팔 할은 목사님의 공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결국 새벽에 깨어 이렇게나마 글로 그를 추모한다.
"목사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목사님이 주신 가르침과 귀한 말씀. 따스한 미소와 마음을 기억합니다. 부러지면 부러졌지 결코 믿음에 있어 타협하지 않으시던 강한 기개와 큰 믿음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느라 바빠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되네요. 3년 전 출장길에 들러 뵈었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때 찍은 사진 속 목사님이 제 기억 속 마지막 모습이 되었네요. 이젠 아픔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도할게요.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