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과 옷을 거쳐 목 안쪽까지 묻은 새똥에 난 얼음이 되었고, 휴지는 커녕 아무것도 없는 길 한복판에서 그나마 손에 들고 있던 음료의 컵홀더를 빼서 긴급조치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살면서 처음 당해 본 일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한 편으론 '오늘은 이 이야기를 써야겠는데~' 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날 보니, 이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곳에 남겨질 '에피소드'가 될 운명인 듯싶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야 높겠지만 여하튼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 로또를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놀리는 꼼군과 그 말에 또 솔깃해서 정말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나. 평온하다 못해 무료해 지기 쉬운 일상에 새똥이 날아와 잔잔한 웃음의 파장을 남기고 갔다.
잔잔하다 못해 무료한 일상. 이런 보통의 삶이 꿈이 었던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의 내가 그랬다.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마음이 통하는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쁜 아기를 낳아 알콩달콩 사는 삶. 그 나이엔 나도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남들 사는 만큼 사는 게 참 어려웠다.
그 당시 피아노 학원에서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며 만났던 한 언니가 딱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자상한 아빠와 토끼 같은 딸들이 앞서 걸어가면, 그 뒤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언니를 보며 나도 딱 저렇게 살고 싶었다. 아주 부자도 아주 가난하지도 않은 평균 이상의 행복한 중산층 가족의 표본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던 그 꿈을 이루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젠 나도 그 옛날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상한 남편과 천사같이 예쁜 아이를 보며 흐뭇해 할 수 있는데, 이 삶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더 오래 또 얼마나 많이 계속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또 다른 숙제로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느꼈던 감정이 있었다. 불안감.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없는 이 나라는 먹고살려면 잠시라도 쉬면 안 된다는 압박 그 자체였다. 그래서 앞만 보며 일했다. 산달이 되어도 일을 했고 아이를 낳고선 3개월 만에 복귀해서 앞머리가 숭덩 빠진 채로 또 일을 했다. 나의 목표는 오직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으나 그 평범과 보통의 삶을 갖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나의 평범함의 기준이 너무 높았던 걸까. 그 기준이 내 안에서 세워진 것이 아닌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었기에 애초부터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노력했다. 끊임없이 일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며 날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게 채찍질하며 앞만 보고 십여 년을 달리다 보니 이제야 겨우 산 중턱 즈음 올라와 잠시 한숨 돌리며 내가 온 길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기어코 이뤄낸 평범한 삶에 닥쳐온 휴직이 자꾸만 날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제 겨우 짬이 났을 뿐인데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들어낸 이 삶이 어느 순간 무너질까 마음이 자꾸만 조급해진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루는 괜찮았다가 또 다음날은 불안이 몰려온다.
보통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물밑에선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대야 하는 이 상황이 꼭 평균대에 올라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