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머리와 씨름을 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곱슬머리를 갖고 태어난 나는, 평생의 소원이 예쁜 생머리를 갖는 거였다. 어릴 때는 매직 스트레이트라는 것이 없을 때라 맡으면 병에 걸릴 것 같은 심한 화학 냄새가 나는 약을, 기다란 판때기에 발라 머리를 붙여 피는 펌을 하고 다녔는데 그 펌은 그렇게 썩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습해진 공기 탓에 수분을 잔뜩 머금은 머리가 두 배는 부해졌고, 갑자기 소나기라도 맞을 때면 얼마 후 머리가 말라 곱슬머리가 치고 올라올 새라 차라리 비를 맞아 젖은 상태에 있는 것을 선호했다.
시간이 흘러 기술의 발전 덕에 매직 스트레이트라는 펌이 나왔고 이제 스트레이트 기계 없이는 난 어디도 가지 않는다. 1년에 두세 번 정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쫙쫙 피는 것이 내 헤어스타일 관리의 전부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오랜 패턴이 되어 버렸다.
영국에 있던 기간에도 그 패턴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영국은 알다시피 인건비가 엄청 비싼 나라다. 머리 한번 자르려면 그 당시 환율로 최소 5-6만 원은 줘야 했다. 1파운드에 2300-2500원까지 하던 때이니 가난한 유학 생으로서는 도저히 그 돈을 머리에 쏟을 수 없었다. 돈이 아까워 졸업 후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난 5년 간 영국 미용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영국으로 떠난 지 1년 반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날 본 내 동생은 "뭐야 그 머리, 남미 여자야?" 라며 한참을 놀려댔다. 그 즉시 바로 미용실로 달려간 나는 미용실 언니들의 쑥덕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다행히 졸업 후엔 항공사에 다닌 덕에 한국행 비행기를 20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에 한 번씩 한국에 와 매번 미용실로 달려갔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났던 친한 친구는 남편이 항상 궁금해하더란다. "왜 당신 친구는 맨날 미용실에 있어?"
그렇게 오랜 세월 굳어진 패턴을 이제는 조금 버려볼까 한다. 딱히 회사를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 매일 아침 머리를 펼 일도 없고 나갈 일이 있으면 그냥 질끈 묶고 다니면 되니 미용실과는 더 멀어졌다. 그리고 중요한 건 슬금슬금 올라오는 곱슬머리들이 이젠 그리 밉지가 않다는 것이다. 내 나이쯤 되면 일부러 돈 주고도 곱슬 펌을 하는데 난 자연 펌이 되어 있으니 이걸 살려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자연 펌이라는 것이 돈 주고 한 예쁜 펌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일단 머리가 엄청 부스스하다. 헤어 에센스를 덕지덕지 발라 간신히 진정을 시켜주고 머리띠도 해 보고 묶어도 보고 반머리도 해보며 최적의 상태를 찾아본다. 하지만 곱슬머리가 충분히 자라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때까지는 당분간 bad hair day를 견뎌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한편으론 '휴직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시도를 해 보겠는가. 내 머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예뻐해 줄 시간이.'라는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한다.
그래, 버틸 수 있는 때까지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