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도 해 본 놈이 잘한다.

이도 저도 아닌 인생, '다음에'는 언제일까?

by 지오바니

일을 할 땐 내게 만약 쉴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일 들이 았다.


대부분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취미생활과 관련된 일이다.


대낮에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며 운동을 하고,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개헤엄만 치는 수영도 강습을 받아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꼭 배워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던 베이스 기타를 하나 사서 이정선의 기타 교실(그렇다. 나는 그 세대다!)이 아닌 유튜브로 독학도 해 보고 싶었다. 또 주에 내려가 시간을 보내며 툭하면 삐걱대는 내 허리에 그렇게 좋다는 말도 타고 폼나게 골프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생긴 지금 나는 여전히 저런 소망을 소망으로만 갖고 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음에'를 입에 달고 사는 중이다. 이 핑계를 대자면 일을 할 땐 시간이 없었고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은 마음껏 취미생활에 쏟을 만한 경제적, 심리적 여건이 안 된다.

이런 상태라면 1년 후에도 저 소망들은 여전히 소망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결국 이 모든 것을 현실화시키는 건 시간이나 돈과 같은 여건이 아니라 시도해 보겠다는 결심이었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취미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많은 사람들에 비하자면 나는 저 게으르고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나 보다. 이렇게 또 부끄러워진다. 환경만 탓하며 내 삶이 재미없다고 한탄만 하며 이 긴 세월을 보냈다니...


휴직을 하면 새로운 인생이 '뿅!'하고 나타나 나를 재미있고 흥미로운 취미생활의 세계로 인도할 것 같았다. 허나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회사 동료들과 수다 떨며 하던 한탄을 집에서 혼자 하고 있다는 것이 바뀌었을 뿐.


제레미 러프킨이 예견한 '노동의 종말' 이 정말 온다면 어떻게 그 잉여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노동의 종말까지 가지 않아도 잠깐 생긴 잉여의 시간에도 뭘 할지 몰라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참 암담하다.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일을 하며 보내다가 그 일이 없어졌을 때 처음 기분은 허탈, 공허 그 자체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머지 3분의 2도 그 3분의 1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었기에 실질적으로 모든 시간은 일에 헌신되어 온 게 맞다.

제 하루의 주인공인 '직장'이 없어졌으니 이론적으로는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공백이 된 3분의 1을 되찾겠다며 안달복달 중이다.


문득 '우아하게 이기는 여자(윤여순)'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른다. 책을 통해 본 LG 최초의 여성 임원이었던 저자는 일을 할 때는 정말 불도저처럼 끝까지 밀어붙이는 실행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쉴 때는 또 확실히 놀며 쉬었다고 했다. 그래야만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 때 완벽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이도 저도 아닌 상태는 이도 저도 아닌 인생을 낳기 십상이다. 지금의 나처럼.


허나 평생을 안 해 본걸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결심만 하면 되는데 그 한 발자국을 떼기가 이리 어렵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잘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