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by 지오바니

어느 날 뒤늦게 공부를 하고 있다는 내게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목표가 뭐예요?"

"......"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뭐지?

바로 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공부를 하고자 한 건 오랜 염원이었다.

음악을 공부하고 마케팅 일을 해 온 내게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건 제때 하지 못하고 미뤄놓은 숙제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빈 구석을 채우기 위함이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은 아니었단 뜻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렇게 눈 앞에 지나가는 다양한 기회들마다 흔들리며 마음을 쏟는 것이 바로 정확한 목표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이것저것 찔러보다 걸려드는 것이 있으면 인연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나의 인생 한 구석을 차지하도록 자리를 내어 주었다.


물론 눈 앞의 작은 목표들은 항상 있었다. 코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계획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종착지가 어딘지 그래서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정확한 목표가 없으니 이렇게 휴직을 하며 잠깐 정차했을 때 다시 떠날 방향도 명확치 않다.


그냥 지금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면 괜찮은 건가? 어떤 일을 하던? 이렇게 조금씩 위로 올라가 유리로 둘러싸인 독립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은 건가?




어릴 적 나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재미있는 일이자 보람된 일일 거라 생각했다. 학창 시절 운 좋게도 내 인생 가장 고마운 선생님과 최악의 선생님을 고루 겪으며 어떤 선생이 돼야 하는 건지도 대충 감을 잡았다. (학생들에게 이상한 별명으로 불리며 하도 욕을 먹어 명이 길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 내 인생은 나를 그 방향으로 인도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학부를 할 때 티칭 과목이 있어 딱 한번 학교로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악보를 읽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인형같이 생긴 아이들이 귀염 뽀짝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이 정도라면 선생님도 할 만할 것 같았다. 진지하게 교원이 되어 볼까 고민하던 그때, 졸업 후 최소 3년을 더 공부해야 하고 게다가 영국의 선생님들은 박봉에 아이들의 괴롭힘까지 견뎌야 한다는 걸 알고선 얼마 가지 않아 바로 포기했다. 성장이 빠른 영국의 십 대 아이들은 차려입으면 도대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 아이들을 내가 통솔할 수 있을까? 영어도 네이티브가 아닌 한국인 여선생이라... 소심한 나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한국은 선생님이 아직까지 선망의 직업이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항상 선생님 수가 모자란다. 물론 10여 년 전 얘기다. 지금은 여건이 좋아졌길 바란다.


그렇게 어릴 적 꿈을 놓아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좋아 보이는 옵션을 선택해서 살아왔다. 그 인생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삶이 싫증이 난다. 그리고 더 이상 좌충우돌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 난 인생의 절반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고 지금 이 인생에서 뚜렷한 목표를 정해서 나아갈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귀가 아프게 들어온 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가 오늘따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선택의 버튼을 누르기 위한 이정표가 되어줄 목표를 찾아 오늘도 깊은 생각에 잠긴다. 원래부터 내 인생에 원대한 야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뒤돌아 보며 후회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 그러나 이젠 그 물음에 꼭 대답을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목표가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