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 삼겹살 못 먹지?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짜증이 날까~아~~~
제가 요즘 개사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요즘 남편은 유튜브 영상을 만든답시고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하느라 아침에 늦게 일어나 겨우겨우 출근하기가 부지기수이며, 이제야 습관으로 자리 잡은 퇴근 후 남은 설거지나 기저귀통 버리는 것도 다시 자주 깜박합니다. 머릿속에 가득 찬 유튜브 생각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구독자 수는 0명, 조회수도 미미합니다.)
남편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ADHD가 보는 세상은 터널과 같다고 하더군요. 즉 주변은 보이지 않고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인다는 것이지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부로든 아니든 그게 뭣이 중요한가요? 이미 상대방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고 아니 기분을 떠나서 결국 책임과 짐을 내 등에 옮겨지게 되는데, ‘아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지 참!”이라고 미소 지으며 얼씨구나 내 등에 모든 짐을 옮겨질 이가 어디 있을까요?
남편이 확실히 ADHD이구나!라고 확신을 더한 의사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4명의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제안합니다. “오늘 짜장면 어때요?” 그러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쓱 한 번 쳐다보죠. 혹은 “어제 중식 먹으신 분?”이라고 사람들이 괜찮은지 살핍니다. 그런데 ADHD인 사람은 그런 게 없어요. “짜장면 먹자!”하고 그냥 갑니다.”
네, 확실히 남편이었습니다.
예전에 경상도에 청동이와 셋이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죽통밥이 먹고 싶은 그는 상대방이 먹고 싶든 말든 간에 거기에 꽂혀 네이버 지도를 켜고 운전합니다. 일정과 상관없이 산을 넘고 청학동을 지나 무려 2시간 가까이 단지 그 죽통밥을 먹으러 간 것입니다. 저와 아들은 지칠 대로 지쳐 이미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도착하였을 때 찾아간 음식점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결국 산에서 비빔밥을 먹고 내려왔더랬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팀원들과 출장을 갔을 때 다들 귀찮으니 그냥 근처에서 먹자라고 한 것에 잔뜩 화가 납니다. 이미 마음속에 맛집 어디에 가서 먹을 계획이었던 것인데 사람들이 거기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보통 사람들이라면 내가 아무리 먹고 싶어도 팀원들이 의사가 없으면 아쉬워도 다수에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혼자라도 운전해서 먹고 와야 직성이 풀립니다.
식탐이 굉장히 많아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을 때까지 그 음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계속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떠오르면 시간이 없어서 안된다고 이야기했을 때 납득하는 것 같다가도 외출하기 1시간 전까지도 ‘지금 삼겹살 못 먹지?’라는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해 왜 어이없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정말 환장하게 하는 것은 부주의한 행동과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시는데도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건망증입니다. 한 번은 제가 홍동이를 임신하여 만삭이었을 때, 남편과 아들이 시누집에 놀러를 가기에 시누에게 줄 고가의 핸드워시를 선물로 주었는데 5분도 안 돼서 남편이 집으로 급하게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말하길,
아빠가 계단에서 떨어뜨려 박살 나서 다 쏟아졌어.
어딜 나갈 때 차 키나 물건들을 놓고 와서 꼭 몇 번은 집에 다시 들락날락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친정에서 아이 픽업할 때 반찬 등 음식을 싸주며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고 알려주면 집에 오는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기억이 휘발되어 아무 데나 방치하여 음식이 썩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하루, 일주일에도 수십 번 반복되고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런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요? 아직도 남편은 5살에 숙모 될 사람과 삼촌을 따라 해변에 같이 놀러 갔을 때 자기를 진저리 난다는 듯이 쳐다보던 숙모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회사에서는 회의를 하면 절반 이상이 휘발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능한 후배의 회의록이 아니고서는 그런 말이 오갔었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왜 항상 할 일을 제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해 야근을 매일하고 집에 와서까지 메일을 쓰느라 끙끙대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고 난 후 의사는 남편에게 약을 권하면서도 아래와 같이 덧붙였습니다.
회사 생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집에서 아내분이 답답한 것은 그대로일 거예요.
아주 심한 ADHD가 아니고서는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두엽은 성인이 되면 이미 90~95% 수준은 일반인과 동일하게 성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ADHD로 인해 가졌던 습관들은 고착화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남편은 약을 먹고 회사생활에서 자신감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1시간이면 끝날 일을 3시간, 4시간 걸리던 것도 사라졌고, 전화통화에서도 어눌하던 부분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회의에서도 머릿속이 또렷해지니 이야기하는데 수월하다고 합니다.
집에서도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실행력’이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말 동안 남편에게 요청한 일이 아래 5가지라고 해 봅시다.
청동이 실내화 빨기
화장실 청소
청소기 돌리기
방바닥 물걸레질 하기
청동이 목욕시키기
이전이라면 잔소리를 계속해야 이중에 겨우 한 두 가지 하고 주말 동안 계속 자거나 빈둥대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지금은 쉽게 미션을 수행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스트레스가 많이 경감되었죠. 이 부분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직도 말귀는 어둡습니다. 문장구조가 복잡하게 들어가거나 길어지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전혀 엉뚱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가히 살만합니다.
ⓒ 금난화
이 글은 작가의 실제 경험 기반의 창작물입니다. 무단 복제·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