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로 말하자면

죄송하지만, 아들 자랑 좀 하겠습니다

by 금난화
아따, 아들이 겁나게 엄마를 챙기는구먼. 멋지다.
그려, 남자는 여자를 잘 챙겨야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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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들과 단둘이 데이트를 하였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주토피아2를 극장에 서 보기로 한 것입니다. 극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를 얼른 빈자리에 앉혔습니다. 노약자석뿐이라 저는 서서 가는데, 아이가 “엄마, 넘어지면 안 돼!” 하고 저를 꼭 붙잡습니다. “엄마가 여기 앉아.”라고 하며 살뜰히 저를 챙기는 아이를 보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미소를 짓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아따, 아들이 겁나게 엄마를 챙기는구먼. 멋지다. 그려, 남자는 여자를 잘 챙겨야 혀.’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다정다감하고 마음 여린 아이, 저희 아들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속이 깊은 아이는 여섯 살 때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신데렐라 같아. 하지만 내가 있잖아.” 일하고 돌아와 홀로 아이를 친정에서 픽업하고, 씻고 청소하고 아이 숙제 봐주고 책 읽어주고 기진맥진해서 옆에 누은 저를 보고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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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이를 낳고 이십일쯤 지났을 때, 남편이 도무지 갈 생각을 안 해 영하 13도에 아이 유치원에 갔습니다. 아이와 함께 돌아오는 길에 제가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쳐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먹지도 못하고 울고 있을 때, 아이는 숟가락에 밥을 떠서 제 입에 넣어줍니다. 남몰래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가지고 베란다로 나가 달을 보며 ‘엄마를 빨리 낫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돌아옵니다. 홍동이가 뱃속에 있을 때, 베트남 여행에서 간 한 성당에서는 ‘내 동생이 건강하고 예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아이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사랑을 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였구나. 너는 나를 우주와 같이 사랑해 주었구나.'

너무나도 예쁜 영혼, 착한 심성, 고운 마음씨를 가진 이 아름다운 영혼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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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가 학교에서 한 선생님이 자신이 종이접기를 잘 못하는 것을 보자 “아휴 머리 나쁘네. 너 이래서 2학년 될 수 있겠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무용에서 동작이 좀 늦자 “너만 잘하면 돼 너만!”이라고 무안을 주었다고 합니다. 너무 화가 납니다. 아이는 현재 실행능력이 조금 떨어져서 늦을 뿐,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선생님을 찾아가 ‘저희 아이 엄청 똑똑하거든요!!’라고 면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언어치료를 공부하는 지인이 언어정상발달 아동의 샘플이 필요하여 저희 청동이를 테스트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한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가는 모습”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청동이가 “아저씨가 피자를 들고 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커플이 있어 당연히 꽃다발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그림을 보니 두 사람이 서있는 쪽에 음식점이 있었고 꽃다발 그림이 정말로 언뜻 보니 피자처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4살에 돼지는 영어로 pig라고 알려주자 깔깔거리고 웃으며 “돼지는 피곤해. 피곤해서 pig야”라고 말할 정도로 창의력이 풍부한 아이입니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틀에 박힌 행동과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어린 시절 그렇게 자랑처럼 배운 단일민족이라 더 그런 것일까요?



청동이도 남편처럼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져간 맛있는 간식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4~5살 때는 어른들의 딸기도 자기 앞에 갖다 놓고 양손 가득 쥐고 혼자 먹으려고 했다면, 지금은 ‘엄마도 먹어봐’, ‘할아버지도 먹어봐, 맛있어’ 하면서 입에 쏙 넣어줍니다.


남편은 현관문에 들어서면 신발을 내팽개치고 다른 사람의 신발을 마구 밟고 들어와 옷을 아무 데나 던져놓는다면, 청동이는 현관문 들어와서는 신발장 정리를 하고 벗은 옷은 예쁘게 개어 놓고, 약기운이 다 떨어져 아무리 피로하더라도 자신의 숙제는 울면서라도 끝냅니다. ADHD 아동에게 새로운 습관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정리정돈은 최악이고 지루함을 못견딘다고 하죠. 지나영의 책 “본질육아”를 읽고 저는 청동이가 스스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장난감 때문만도 아니고 엄마가 준 칭찬 포도알 모으는 것 자체로 기쁜 아이, 정리정돈과 청소를 정말 깨끗이 하는 아이, 동생 기저귀 버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언제든 달려와주는 아이, 그렇게 청동이는 자라고 있습니다.



ADHD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살면서 느낀 것은 배우자와 똑같이 ADHD라고 해도 아이가 그대로 닮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ADHD라는 프레임에 아이의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중략)…

난 찌루 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데르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너머 파란 나라 있나요

저 파란 하늘 끝에 거기 있나요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 노래 <파란 나라를 보았니> 가사 中 -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읊조리다가 스윽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닦습니다. 경쟁도 없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비교가 없는 세계,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되는 ‘파란 나라’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 청동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부디 그런 ‘파란 나라’에 가깝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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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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