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 행복이 단순히 편한 것을 의미한다면요

by 금난화

제 지인이 저에게 조언이랍시고 한 말입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잖아.
그래서 난 그냥 내가 편한대로 하기로 했어.
어차피 크면 다 먹고 다 하게 될 텐데 뭐.


청동이가 4~5살이던 시절 인스턴트나 몸에 해로운 음식은 주지 않고 저는 배달음식이나 빵으로 때울지언정 아이만큼은 손수 집밥을 해먹이고, 미디어 노출도 최대한 하지 않고 퇴근해서 너무 피곤해도 꼭 책을 읽어주는 제가 유별나다며 한 소리입니다. 저는 그때도 그 집 첫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지금은 부모의 희생과 수고로움 없이 아이가 잘 자라기는 어렵다는데 확신을 가집니다.


그 집 아이는 청동이보다 몇 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집안 유전으로나 아이의 여러 행동 특징으로 보나 ADHD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린이집에서부터 다른 원아들과 트러블이 많았고 유치원에서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다른 아이들의 물건을 제 것처럼 사용하고 심지어 청동이의 새로 산 킥보드를 보자마자 자기의 헌 것을 던져버리고 제 것인 양 타고 다녔습니다. 다른 형의 장난감도 형이 울건 말건 허락 없이 가져가서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머니의 행동입니다. 어린이집에서 트러블이 있으면 이기고 오라고 맞고만 오지 말라고 말하거나, 다른 아이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서 사용하는 것도 그저 쳐다볼 뿐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밥을 먹을 때였는데 이를 위해 같이 장을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 아이가 밥은 거의 먹지 않고 과자나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고 둘째 아이는 심각한 비만인데도 남편이 ‘애들을 고기를 구워줄까, 생선 구워줄까’하고 고민하니 화를 벌컥 내며 “애들은 햄만 구워줘도 잘 먹는데 왜 이렇게 애들 먹는 거에 신경을 쓰냐”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자신들은 수십만 원짜리 회를 떠서 먹는데 아이들은 그저 햄 하고 밥만 먹인다니… 저희로서는 이해를 하기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햄을 구워 아이들한테 줄 때 남편이 “햄이라도 좀 좋은 거 주던지”라고 말 끝을 흐렸습니다. 싸구려 햄이었습니다. 사실 남편도 청동이가 아기일 때는 지인과 비슷하였는데 친정 부모님이 극진히 청동이를 돌보아주시고 친정 엄마가 하시는 것을 보고 생각이나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피곤하다고 유치원생 아이에게 TV를 마음대로 보게 홀로 두고 자신은 방에 가서 잠을 잤습니다. 아이가 어떤 유해한 프로그램을 보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가 어린이가 봐서는 안 되는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보고, 반 친구들이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유치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상황을 알고 ‘유치원에 찾아가 보라’고 귀띔을 해주고 나서야 아이의 상황을 이해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둘째 아이가 어릴 때 ‘누가 봐주겠거니’;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느라 아이가 혼자 집 밖에 나가는지도 몰라 큰일이 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일어나 벌컥 화를 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를 잘 보지 않고 뭐 했냐’며 화를 내는 정말 황당무계한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네 맞는 말이지요. 육아세계에서 마케팅처럼 많이 떠돌던 문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점차 흐려지고 ‘엄마가 편한 게 장땡이다’라고 왜곡되어 이해하기도 합니다. 힘든 것은 피하고 싶은 엄마들의 변경으로 쓰이는 것이지요.



저의 경험으로 보나 제 주변으로 보나 잘 자란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노고와 희생을 먹고 자란 경우가 많습니다. 금수저, 은수저가 아닌 이상 보통 일반 사람들은 모든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부모가 챙기고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희생이라고 해서 엄마 아빠가 자신을 모두 갈아 넣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의 어린시절의 경우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늘 학교 가기 전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주신 엄마, 퇴근하시고 밤이 늦어도 다음날 입을 교복을 항상 빳빳하게 다려주신 아빠, 아무리 쪼들려도 도서관처럼 책이 가득한 환경을 만들어주신 엄마, 당돌하게 따지고 들고 조금은 버릇없어 보여도 아이의 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여 의견을 들어주신 아빠, 학원 다녀오는 밤늦은 길 늘 데리러 나와주신 부모님 그런 부모님의 노고로 제가 잘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만 하더라도 아들 둘 키우는 워킹맘 동료 역시 일이 끝나고 피곤에 찌들에 퇴근해서도 아이들의 숙제를 체크하고 학교 준비물을 챙기기도 하고, 마트가 끝나갈 때쯤 부리나케 뛰어가 다음날 아이의 소풍 도시락에 쓸 재료를 사가는 엄마, 아이가 비만이라며 하루 종일 영업관리 하느라 다리가 퉁퉁 부어도 퇴근하고 아이를 끌고 공원을 같이 걷는 엄마,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아 자신은 몸으로 때워야 한다며 쉬는 날마다 아이를 데리고 저렴하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발품 팔아 다니는 엄마, 제 주변에 잘 자라는 아이들 곁에는 늘 엄마, 혹은 아빠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노동을 다니던 한 아버지가 ‘성공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먼저 집에서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듣고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매일 퇴근하고 돌아가 저녁 밥상에 앉을 때까지 책을 읽으시거나 신문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들고 있는 책이 거꾸로 되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글을 읽으실 줄 모르는 문맹이었던 것입니다. 그저 아들이 잘 자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본보기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아주 오랫동안 그리하셨던 것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책과 신문을 하루 종일 보고 있는 그 수고로움을요. 저는 이 아버지가 앞서 이야기한 희생과 수고로움의 표본이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 다시 만난 지인은 여전하였습니다. 그 아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 주변을 굉장히 불편하게 하였고, 하루 종일 핸드폰만 붙들고 게임하거나 동영상을 보고 동생을 과격하게 때리거나 언어폭력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인은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애를 만났나 몰라.”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도 청동이의 남다름에 종종 환장할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크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하나하나 짚어서 일러주어야 하고, 굉장히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어야 하고, 유해한 환경에 좀 더 취약하기 때문에 환경 조성을 하고자 저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좋아하는 드라마 보며 밥 먹고 싶은 욕구도 꾹 눌러 참지요. ‘엄마는 하면서 왜 나는 안되는데’ 그런 생각이 안 들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기꺼이 내어주는 수고로움을 자양분으로 먹고 자란다고 말입니다.



ⓒ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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