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친한 친구와 손쉽게 멀어지게 하는 법을 아시나요?
바로 ‘비교’입니다.
비교를 하는 순간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형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홍동이는 아무래도 요정나라에서 온 거 같아.
그래서 요술봉을 줬어. 옛날 기억이 날 수도 있잖아.
청동이가 여동생 홍동이에게 요술봉을 만들어주며 한 말입니다.
나이 차이가 6살 나는 여동생을 청동이는 참 예뻐라 합니다. 홍동이가 8개월 되었을 때 설사로 똥꼬가 빨개지자 내 동생 똥꼬 아프겠다고 유치원에서 만든 부채로 부채질을 해주기도 하고, 하도 부잡스러운 홍동이로 인하여 힘들어 제가 짜증을 내면,
“엄마 홍동이는 아기잖아. 아기가 그럴 수도 있지. 홍동이한테 뭐라고 하면 안 돼.”라고 오히려 저에게 의젓하게 말을 하기도 합니다.
나이차이가 한참 나도 홍동이와 밤마다 자기 전에 어찌나 깔깔거리며 잘 노는지요. 돌도 안된 홍동이도 오빠가 자려고 누워있으면 ‘히히’ 하고 웃으면서 기어가 오빠 얼굴을 만집니다. 마치 ‘일어나 오빠 놀자~’ 하는 것 같습니다. 청동이가 TV를 보고 있으면 소파에 기어올라가 청동이 옆에 탁 앉습니다. 둘이 껴안고 같이 TV 보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홍동이를 베이비룸에 두고 있으면, 홍동이가 울타리를 붙잡고 울어도 우적우적 먹는 남편과는 달리 마음이 아파서 밥을 못 먹겠다고 하는 청동이입니다.
바깥에서는 얼마나 팔불출 오빠인지 ‘저 엄청 예쁜 여동생 있어요.’라고 오만군데에 자랑을 하고 다니는 통에 학교며 학원이며 선생님들이 홍동이 이름이며 심지어 몇 개월인지까지 다 아실 정도입니다.
그런 청동이와 홍동이를 보면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 남매가 그렇게 우애가 좋으냐며 놀랍니다. 오빠가 동생을 너무 사랑한다고 부러워합니다. 게 중에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가 보다. 우리 애들은 나이차이가 얼마 안 나서 서로 사이가 안 좋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네, 그런가 봐요.’라고 하고 웃으며 대답하지만 사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나이차이만 많이 나면 아이들이 알아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가 될까요? 저는 형제지간에 사이가 안 좋은 대부분의 원인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형제지간에 사이가 안좋은 집을 보면 부모가 경쟁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비교를 하면서 한쪽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요. ‘누나만큼만 해봐라’ ‘동생만도 못하냐.’ 어른들도 회사에서 비교를 당하면 잠을 못 잘 정도로 분하고 화가 나는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 형제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맙니다.
또 한 가지는 어린 동생의 말을 빌어 빈정대는 부모의 말투입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투영하여 “00이도 하는데 형은 왜 못하냐는데?” “00이가 형보고 겁쟁이라는데?” “00이가 뭘 보고 배우겠냐? 형이 되가지고” 이런 식으로 동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동생을 형의 적으로 만들고 맙니다. 저의 남편도 홍동이가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제가 굉장히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홍동이를 가졌을 때 제가 마음속으로 결심을 한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비교하지 않기”입니다. 저의 엄마는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형제뿐만이 아니라 친구들, 지인들까지 모두 비교 대상이었습니다. 모두가 이겨야 할 대상이었죠. 세상에 나가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경쟁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둥지가 되어야 할 집마저 경쟁을 해야 하는 곳이 된다면 그 얼마나 마음이 외로운가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 간에는 절대로 ‘비교’를 하지 않겠다. 서로 마음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홍동이와 함께 집에 온 순간부터 청동이와 관련된 모든 것은 좋은 말만 하기로 했습니다. 꼬물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울 때도 “아이 귀여워. 우리 청동이를 닮아서 홍동이도 귀엽네.” “너 옛날 사진 봐 청동아, 홍동이가 우리 청동이랑 똑 닮았네.” “우리 청동이 때는 닳을 까봐 사람들이 만지지도 못하게 했었는데.”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우리 홍동이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귀엽냐 진짜.’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엄마 나 닮아서 귀엽지 누구 닮긴 누구 닮아.’라고 멀리 있던 청동이가 소리를 칩니다. 어느덧 동생에게 하는 좋은 말들이 자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질투의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너무 사랑스러운 동생입니다.
세 번째는 지나친 책임 전가입니다. '네가 언니니까, 오빠니까, 형이니까, 누나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며 너는 동생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고 동생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요. 둘째든 셋째든 아이를 돌보는 책임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있습니다.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고 모범을 보이고 참고 양보하라고 하는 것은 동생의 존재를 회피하고 싶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둘째를 낳는 것은 아이에게는 같이 살던 남편이 어느 날 다른 여자를 데리고 집에 들어오며 ‘오늘부터 같이 살 두 번째 와이프야.’라고 이야기하는 만큼의 충격이라고 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미 혼란스러운 아이에게 나 편하자고 어른스러움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청동이에게 동생의 존재를 처음 공개할 때 ‘청동이가 요정에게 동생이 생기게 해달라고 소원 빈 적이 있었지? 요정님이 소원을 들어주셨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청동이는 아빠보다 더 많이 태어날 아기의 초음파 심장소리를 들었고 3D 입체 사진을 보았을 때는 자신과 닮은 것 같다며 한참을 보고 자기 전엔 ‘홍동아 빨리 만나고 싶어. 잘 자.’라고 꼭 인사하고 잠을 잤습니다. 동생과 관련된 동화책도 함께 참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청동이에게 동생은 요정이 자신에게 준 선물입니다.
청동이에게 의젓함을 강요하는 대신 “청동아, 옛날에 네가 아기일 때는 엄마 아빠가 너만 사랑하고 신경 쓰고 챙겨주고 했는데 홍동이는 그렇게 못하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청동이가 더 사랑해 줘.’라고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동이는 동생이 마음 상하면 안된다고 더 많이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배고플까 봐 아빠는 왜 이렇게 느리냐며 분유통을 들고 신속배달을 해줍니다. 기저귀도 버려주고 홍동이가 신생아시절 새벽에 목이 터져라 울어 잠이 깨어도 한 번을 짜증을 낸 적이 없습니다.
“엄마는 우리 청동이가 최고야. 청동이를 제일 많이 사랑해.”라고 이야기해 주자
“엄마, 쉿. 홍동이가 들으면 서운해 할 수 있으니까 똑같이 사랑해 줘.”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요 중에 ‘모두 다 꽃이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가 참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사가 제법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다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이하 생략 …. <'모두 다 꽃이야' 가사 中에서>
아이들의 영혼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부속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소질이 있고, 성품이 있습니다. 들꽃이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다고 하면 반대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부모는 하늘이 잠시 맡긴 저마다의 고유함을 가진 '인꽃'들을 그저 사랑하는 존재로 이 땅에 있는 것이겠지요.
ⓒ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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