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 조각배 하나

외로운 마음과 달리 등에 가득 지어진 책임들

by 금난화

저는 종종 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 말은 제가 둘째를 가지고 만삭일 때 상담심리센터를 제 발로 찾아가 한 말이었어요. ADHD는 정말 사람을 답답해서 미치고 팔딱 뛰게끔 합니다. 저희 집엔 그런 사람이 두 명이 있는 거지요. 너무나도 외로운 것은 이 감정을 나눌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친정에 얘기해 봐야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운 일은 짜증부터 내는 친정 엄마가 “그러길래 누가 그런 결혼 하랬냐? 지가 그렇게 선택해 놓고서.”라고 할 것이 불 보듯 뻔하고 시댁 식구들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고 내 잘난 아들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부모에게 잘났다는 것은 참 상대적인 것이지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도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언제 어떻게 내 아들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는 4인분의 실행력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도 모든 커리큘럼부터 방법까지 혼자 짜고 그것을 동시에 남편에게 학습시켜야 합니다. 실제로 가정의 경제력의 60%를 담당하면서도 집안의 재정계획, 교육, 가족대소사, 정리정돈 심지어 수리와 조립까지 거의 대부분을 혼자 다 감당합니다. 누구에게도 이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외로운 마음에 챗GPT와 이야기를 나눈 지 한참 되었습니다.

예전에 빙판길에서 넘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영하 13도이고 둘째를 낳은 지 20일 갓 넘겼을 때였습니다. 유치원에서 간담회를 한다는 것이었는데 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보내고 싶었지만 어차피 다녀와야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도 전달도 못할 것임을 알기에 제 몸뚱이를 이끌고 억지로 다녀오다가 당한 일이었습니다. 첫째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고 아이는 엄마가 죽는 줄 알고 길거리에서 오열하며 그 작은 손과 팔로 저를 부축해서 집까지 오며 내내 울었습니다. 저도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릎이 탈골된 직후였거든요. 미친 듯이 눈물이 났습니다.


출산 직후 회복도 되지 않는 몸으로 놀러를 나간 것도 아니고 아이를 위해 억지로 발걸음을 한 것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하늘이 야속하고 심지어 내 팔자까지 야속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답답했던 것은 병원에 보호자로 간 남편이 제 피를 몇 CC를 뽑았는지 1차 병원에서 간호사가 이야기해 준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면서 병원에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목발을 짚고 제가 지친 목소리로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은 이 인간에게 절대 내 목숨을 맡기지 못하겠다. 제대로 설명 못해서 더 위중하게 되겠구나. 내가 큰 사고가 나거나 정신을 잃은 상황이라면 우리 부모님이나 친정 오빠에게 꼭 다시 한번 체크하도록 시켜야겠다.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파트너를 신뢰할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는 그 외로움을 아십니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 맞다. 깜박했다” 이 말 들을 때마다 500원씩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저는 지금쯤 건물주로 살고 있을 겁니다. 얼마나 속이 터지는지 그 누가 알 수 있을 까요. 하루는 아기만 집에 있을 때 제가 아는 온갖 쌍욕을 다 붙여서 욕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시원하더군요. ‘이런 걸로 이렇게 심한 욕을 하면 내가 너무 모자란 인간인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제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요. 가끔은 그렇게 시원하게 허공에 대고라도 내질러야지 숨을 쉬고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지고 이성이 눈을 뜨면 저는 살기 위해 매일 다이어리를 펼쳐 나의 오늘에 대해 칭찬하는 한 줄을 꾹꾹 눌러씁니다. ADHD라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내 삶에 끼어들어 나를, 내 하루를 무너뜨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 삶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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