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낮은 사람의 선택

결혼은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닙니다만

by 금난화

오늘은 조금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며 중요하다고 많이 듣는 '자존감'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친한 동생이 최근 결혼을 하여 자녀계획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웃는 얼굴로 듣고 있었지만 ‘이제 너도 고생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의 남편도 ADHD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운 좋게 ADHD를 피해 간다면 좋겠지만, 남편과 자녀 모두가 ADHD인 경우 한국사회에서 살기는 정말 힘에 부칩니다. 해맑게 ‘아이가 ADHD이면 처음부터 약을 먹이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그 친구에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만 6세가 되기 전에는 의심이 되더라도 약 복용이 어렵다는 것과, 심지어 어린아이가 약을 먹는다고 하루 종일 ADHD 기질을 누르며 살 수 있도록 약이 고안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 친구는 모르는 듯했습니다. ADHD는 유전력이 굉장히 높고 특히 여아보다 남아의 발병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기에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는 더 고민해 보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습니다. 그 친구도 저처럼 모범생으로 살아 평생 칭찬만 받고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기에 얼마나 고통을 받을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였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하는 그 기분을 알까요..? 어떤 문제를 아이가 이야기할 때마다 당장 아이 편을 들기 전에 우리 아이가 혹시 또 뭔가 잘못을 한 것이 아닐까 매번 노심초사해야 하는 그 마음을 아직 그 친구는 모르겠지요. 같은 말을 100번을 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 답답함과 속으로 무한번 인내해야 하는 고통을 알까요..?



사실 과거를 더듬어보면 지금의 남편에게 이상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연애경험이 없어서라고 넘겼지만 조금은 어눌하고 소위 띨빵한 행동들이 자주 있었고, 먹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였고, 자취방의 부엌이 정말 기함할 정도로 더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회사에서 지나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던 때였던 터라 모르는 척 한쪽 눈을 감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ADHD 뿐만 아니라 자라온 환경이나 일반 상식, 취미생활, 여행 경험, 독서량, 음악 취향 등 굉장히 동떨어진 사람인데 저는 왜 저자신을 헐값에 넘겨버렸던 것일까요. 지금도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남편의 ADHD 기질이라던지 자녀를 방치하듯 키운 시부모님이 아닙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인생지중대사’인데 저는 마치 친구와 점심메뉴를 결정할 때 크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 고집을 내세우기 조금 미안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메뉴를 선정하는 것과 같이 제 결혼을 결정했다는 과거의 저 자신을 최근까지도 용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요즘은 ADHD를 사람의 한 가지 특성일 뿐이라고 매스컴에서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나 ADHD 인가 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DHD와 함께 사는 가족들은 아마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요즘 매스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무언가를 빠뜨리거나 조심성이 없고 본인 중심적 사고로 늘 살아가고 대화에서 자주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며 충동성이 일면 자제하기가 힘든 남편과 동시에 역시 늘 자주 깜박하고 산만하며 감정조절이 어려워 쉽게 징징거리고 단체생활에서 늘 튀고, 친구들과 갈등이 잦고 신발 신고 옷 입는 것 등 기본적인 것조차 다른 아이들보다 2~3년이 느린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단언컨대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심스럽지만 아주 냉정하게 ‘아니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만큼 이 삶은 쉽지 않고 저에게 굉장히 많은 희생을 요구하며 뼈를 깎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둘째와 함께하는 저로서는 종종 아무도 모르게 비행기 티켓을 끊어 외국으로 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제대로 된 약물 및 훈육을 통해 자란 사람들까지 동일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도 그렇게 하기 위해 제가 지금 고군분투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이 ADHD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고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관심과 훈육을 받지 못하였고, 적절한 교육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는 현실을 직시하고 본인이 감당할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꼼꼼히 살펴볼 것을 권합니다.



과거에 이런 선택을 한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이 미워하다가도 가끔은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짠하기도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반짝반짝한 사람이었습니다. 4세에 피아노를 치고 한글을 깨치고 6살에는 바이올린까지 수준급으로 했습니다. 선생님들마다 학원에서 배울 아이가 아니라며 전공을 시키라고 했습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늘 전교 1등이었고 국제봉사동아리를 하면서 몇백 시간의 봉사시간을 보유, 대외적으로 영어토론대회, 전국 논술대회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대기업 첫 직장에서는 이미 대리가 되기 전에 큰 본부에서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존감이 낮아 회사 이직을 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고 (심지어 이직도 선배가 보다 못해 너 보다 못한 애들도 잘만 가는데 네가 왜 못 가냐 여기 써봐라.라고 해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불안감을 갖고 이직한 곳에서 많은 성과를 내며 얼마 지나지 않아 특진하였습니다. 그런 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자존감이 낮았던 것이 늘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전교 1등을 해도 엄마가 저에게 한 말은 ‘그까짓 거 암기만 잘해서 하는 게 뭐 대단하다고.’이었고 어릴 때는 ‘지 할머니 닮아서 코가 못생겼다. 나는 다들 미스코리아 하라고 했을 정도인데 너는 왜 그러냐.’ 하는 말을 듣고 살아 저는 어린 시절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취직해서는 ‘더 잘될 줄 알았는데 이렇다.’ 회사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어 그만두려고 할 때는 ‘너는 늘 끈기가 부족했다’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저는 그게 저 자신에게 확신이 들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이 땅의 딸을 가진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부디 자녀의 자존감을 파먹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자녀가 오만할까 봐, 순간의 쾌감을 위해서, 혹은 다른 자녀가 주눅 들까 봐 등 별별 이유를 다 붙여서 하는 당신의 잘못된 행동이 그 자녀의 미래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지금 당장은 모릅니다.


그 대신에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 네가 자랑스럽다. 너는 더 멋진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다.’ 이런 말들을 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바로 과거의 제가 듣고 싶은 말입니다.



너는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너는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라고. 너는 늘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두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은 가혹하지 않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이 말을 제 아들 딸들이 자라는 동안 해주리라 결심하는 밤입니다.



ⓒ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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