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닌데도 흐뭇하고 든든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떠나신 엄마가 시시때때로 생각나지만 가장 많이 떠오를 때는 채소 손질을 할 때다. 특히 파와 마늘 손질을 할 때면 엄마가 많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싸고 좋은 채소를 보면 지나치지 않고 꼭 한 보따리 사 와서 손질해서 반찬을 만드셨다. 단 한 번도 다듬어 놓은 파와 마늘을 산 적이 없다. 신문지를 펴고 파나 마늘을 잔뜩 펼쳐놓고 다듬는 걸 보면 거들지 않을 수 없는데 옆에 앉아서 하다 보면 금세 싫증이 나서 “아유, 엄마, 그냥 다듬은 거 사서 써요. 뭘 이걸 세월아, 네월아, 다듬고 계셔.” 하고 볼멘소리를 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손 버린다. 그냥 놔둬.” 한마디 하실 뿐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그런 모습을 답답해하던 내가 엄마처럼 싸고 좋은 식재료를 보면 사 와서 다듬고 반찬을 만들고 있다. 유전자가 무서운 건지, 보고 자란 게 무시할 수 없는 건지… 채소를 다듬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엄마 자식이구나 싶어서 웃음이 난다. 혼살림을 하는데 조금만 둬도 상하는 마늘을 많이 사둘 수 없어 소포장으로 조금씩 사다 먹곤 했는데 지난주에 마트에서 저장마늘을 싸게 파는데 좋아 보이길래 통마늘 한 망을 사 오고 말았다. 쳐다보니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지만, 일단 사놓은 건 빨리 손질하지 않으면 상하니 얼른 펼쳐놓았다.
아, 이걸 언제 다해. 싶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엄마보다는 손이 빠른 편이어서 후딱 해치우고 이걸로 뭘 만들까 생각하다가 마늘장아찌를 담그기로 했다. 깨끗이 씻어서 체에 말려둔 마늘을 열소독한 병에 차곡차곡 담고 보니 집에 식초라고는 발사믹 식초밖에 없는 것이다. 얼른 마트에서 식초를 사 와서 마늘을 넣은 병에 부어두고 일주일쯤 뒀다가 식초만 다시 따라내서 설탕, 소금 넣고 끓여서 다시 부어주면 끝이다. 이렇게 마늘장아찌를 만들어 두면 1년 정도 두고 먹을 수 있다.
엄마는 요리도 잘하고, 살림 솜씨가 좋은 편이었지만 한 번도 나에게 당신의 노하우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 순전히 어깨너머로 봤던 기억을 더듬어서 해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레시피도 없고, 전부 감에 의지해서 해보는데 의외로 결과물이 좋은 걸 보면 유전자와 환경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마의 탁월한 레시피들을 각 잡고 배워둘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늘장아찌 몇 병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괜스레 흐뭇하고 든든해지는데 이게 그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더해져 새콤하고 아삭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