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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n 12. 2023

조지 윈스턴을 알려준 레코드 가게

뜻밖의 시간여행을 하다

지난주 조지 윈스턴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스산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조지 윈스턴만큼 사랑받았던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조지 윈스턴이 내게 특별한 것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시절 동네 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마음을 빼앗겨서 처음으로 구입한 음반 이어서다. 레코드가게에 들어가서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더니 주인아저씨가 음악과 꼭 어울리는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재킷을 꺼내 보여주었고, 나는 마음 빼앗겨서 며칠 벼르다가 샀던 기억이 있다.


서랍장 깊숙이 넣어둔 December를 꺼내보고 추억에 젖다가 문득 그 레코드가게가 궁금해졌다. 대형 음반점도 전부 문을 닫은 판국에 동네 조그마한 레코드가게야 당연히 폐업을 했겠지 싶었지만 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상호도 기억나지 않아서 지도앱에서 동네를 검색해 보다가 맞아…가이름이 이거였었지... 어, 눈을 의심할 만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그 레코드가게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좀 더 찾아보니 불과 몇 달 전에도 가게를 방문한 분들의 리뷰가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많이 들었던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10대 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 전람회, N.EX.T, 김건모, 머라이어 캐리,… 모든 음반을 샀던 곳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다니던 성당에서 마니또에게 선물 받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카세트테이프를 얼마나 오랫동안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그 친구의 고급진 음악 취향 덕에 남들보다 일찍 유재하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도 분명 그곳에서 유재하의 카세트테이프를 샀으리라.


이제는 너무 먼 곳이라 찾아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꼭 가보고 싶었다. 며칠 동안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다녀왔다. 와아… 외관과 실내가 똑같은 것도 놀라웠지만,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가장 놀라웠다! 어린 중학생이었던 나는 중년이 되었는데 아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풍성한 수염을 간직한 멋쟁이 모습 그대로였다. 목소리마저 여전한 아저씨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새로 산 게리 무어와 파바로티 음반

사실, 나는 주인아저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시그니처와도 같은 아저씨의 수염 난 얼굴을 보자마자 잊혔던 그때 그 시절이 갑자기 파노라마처럼 기억이 났다. 인생의 큰 걱정 없는 어리디 어린 고등학생인 내가 저만치서 음반을 고르는 모습,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아저씨가 이런저런 말을 붙이셨던 모습까지 한꺼번에 떠오른 것이다. 그때의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아저씨가 말을 거는 게 불편했고, 사고싶은 음반만 사서 나오곤 했었는데 내가 그 당시 아저씨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이곳을 다시 찾아오게 되다니…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아마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을 거고, 학교 역시 모습이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런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코드 가게를 와보니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처럼 신기하고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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