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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n 29. 2023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위험하다

삶의 파도는 끝없이 닥쳐오는 것... 『모비 딕』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압박 때문인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은 선뜻 시작하지 못하다가 문득 아주 긴 장편소설을 읽고 싶었던 어느 날 드디어 주문을 했다.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도 있었지만 『모비 딕』은 소장을 하고 싶어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트로에 소개된 고래와 바다에 대한 길고 긴 발췌록을 읽다 보니 기운이 쭉 빠지면서 이 소설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고래잡이에 대한 다큐멘터리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현대 미국 소설의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1851년 출간한 『모비 딕』은 허먼 멜빌이 사망한 1891년까지 40년 동안 불과 3,200부가 팔렸다고 한다. 19세기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을만한 소설은 아닌 게 분명했던 것 같다. 고래나 바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상식이 있는 현대인이 읽기에도 『모비 딕』은 어렵기도 하고 철학적인 상징이 충만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170년 전 사람들에게는 귀신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느껴졌을 만하다. 


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과 무게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목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엄청난 파도를 이겨내도, 더 큰 파도가 계속 덮쳐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삶이 이어지는 동안 고난과 위기는 끝없이 닥쳐온다. 그걸 하나하나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의 전부라는 걸 허먼 멜빌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포경선 피쿼드호에서 끝까지 정신줄을 붙들고 선원들을 지휘하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이 위험을 불사하려는 저돌적인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모비 딕』이 시종일관 견지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배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 이 말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쓸모 있는 용기는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데에서 나온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빗소리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모비 딕』의 구절구절을 읽으니 새삼 명작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주택에 사니 비 오는 소리가 훨씬 운치 있게 들리는 건 좋은데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슬슬 비피해가 걱정스럽다. 내일은 비구름이 물러나고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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