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도는 끝없이 닥쳐오는 것... 『모비 딕』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압박 때문인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은 선뜻 시작하지 못하다가 문득 아주 긴 장편소설을 읽고 싶었던 어느 날 드디어 주문을 했다.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도 있었지만 『모비 딕』은 소장을 하고 싶어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트로에 소개된 고래와 바다에 대한 길고 긴 발췌록을 읽다 보니 기운이 쭉 빠지면서 이 소설 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고래잡이에 대한 다큐멘터리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현대 미국 소설의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1851년 출간한 『모비 딕』은 허먼 멜빌이 사망한 1891년까지 40년 동안 불과 3,200부가 팔렸다고 한다. 19세기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을만한 소설은 아닌 게 분명했던 것 같다. 고래나 바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상식이 있는 현대인이 읽기에도 『모비 딕』은 어렵기도 하고 철학적인 상징이 충만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데 170년 전 사람들에게는 귀신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느껴졌을 만하다.
하지만 삶에 대한 통찰과 무게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목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엄청난 파도를 이겨내도, 더 큰 파도가 계속 덮쳐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삶이 이어지는 동안 고난과 위기는 끝없이 닥쳐온다. 그걸 하나하나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의 전부라는 걸 허먼 멜빌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포경선 피쿼드호에서 끝까지 정신줄을 붙들고 선원들을 지휘하는 1등 항해사 스타벅이 위험을 불사하려는 저돌적인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모비 딕』이 시종일관 견지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배에 절대로 태우지 않겠다.” 이 말은 가장 믿을 수 있고 쓸모 있는 용기는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그 위험을 정당하게 평가하는데에서 나온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겁쟁이보다 훨씬 위험한 동료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빗소리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모비 딕』의 구절구절을 읽으니 새삼 명작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주택에 사니 비 오는 소리가 훨씬 운치 있게 들리는 건 좋은데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슬슬 비피해가 걱정스럽다. 내일은 비구름이 물러나고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