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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Jul 05. 2023

바흐와 모차르트를 다시 꺼내며

그녀가 사랑했던 피아노 치는 소리

살아오면서 가장 열정을 불태운 시간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해서 3년간 이어진 피아노 수업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방과 후 피아노, 미술, 서예학원 등 나름의 교양수업을 받는 어린이들이 꽤 많았는데 수업료는 한 달에 2~3만 원 정도 지출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매달 수업료를 낼 형편은 되었지만, 피아노를 사줄 만한 사정은 안되었던 것 같다. 


피아노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연습을 할 수 없는 내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피아노 선생님은 혹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른 아침에 피아노 연습 하러 올 수 있겠냐고 내게 물어보셨는데 나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하겠다고 대답했고 다음날부터 새벽 6시부터 연습을 하러 갔다. 


처음 선생님은 아홉 살 꼬마가 얼마나 하겠나 싶었을 테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오기와 끈기가 단단한 편이어서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일 년이 되고, 그렇게  꼬박 3년을 새벽 피아노 연습을 다녔다. 선생님은 이런 나를 기특하게 여기셔서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셨고, 내 실력도 꽤 늘었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엄마였다. 이때의 내 모습을 보고 평생 낚이셔서 내가 크게 성공할 기질을 타고났다고 믿으셨던 것 같다. 


피아노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끈기와 근면성실은 불가사의한 면이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3년 동안 나를 지도하셨던 선생님은 피아노를 팔려고 내놓은 동네분에게 잘 말씀하셔서 저렴한 가격으로(20만 원 정도 했을까?) 인수하도록 엄마를 설득하셨고, 나의 근면성실함에 크게 감복하신(?) 엄마가 내게 피아노를 사주게 된 것이다.  


와아, 나도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피아노를 가지게 되다니… 그런데 그렇게 가지고 싶던 피아노를 막상 소유하게 되니 뛸 듯이 기뻤던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식어갔고, 피아노 수업마저 심드렁해졌다. 어려운 형편에 거금을 털어 피아노를 사준 엄마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고, 나조차도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열정이 식은 걸 어쩌랴. 


결국 열정이 다한 나의 피아노 수업은 중학교 2학년 때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내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너무나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저녁 준비를 할 때 배경음악 삼아 뚱땅뚱땅 쳐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피아노를 가끔 쳤지만, 레슨을 그만두니 날이 갈수록 실력이 떨어졌다. 


엄마가 어렵게 마련해 준 피아노라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도 애물단지처럼 끼고 다녔지만 직장 초년생 시절, 결국 처분하고 말았다. 그리고 섭섭한 마음에 디지털 피아노를 하나 장만했지만 피아노처럼 자주 연주하게 되지는 않았다. 

엄마 생각도 나고 해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을 멋지게 연주해 보려고 악보를 사서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려보긴 했는데… 하하… 내가 칠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바흐와 모차르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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