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흐와 모차르트를 다시 꺼내며

그녀가 사랑했던 피아노 치는 소리

by Rosary

살아오면서 가장 열정을 불태운 시간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해서 3년간 이어진 피아노 수업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방과 후 피아노, 미술, 서예학원 등 나름의 교양수업을 받는 어린이들이 꽤 많았는데 수업료는 한 달에 2~3만 원 정도 지출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매달 수업료를 낼 형편은 되었지만, 피아노를 사줄 만한 사정은 안되었던 것 같다.


피아노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연습을 할 수 없는 내 사정을 딱하게 생각한 피아노 선생님은 혹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른 아침에 피아노 연습 하러 올 수 있겠냐고 내게 물어보셨는데 나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하겠다고 대답했고 다음날부터 새벽 6시부터 연습을 하러 갔다.


처음 선생님은 아홉 살 꼬마가 얼마나 하겠나 싶었을 테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오기와 끈기가 단단한 편이어서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일 년이 되고, 그렇게 꼬박 3년을 새벽 피아노 연습을 다녔다. 선생님은 이런 나를 기특하게 여기셔서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셨고, 내 실력도 꽤 늘었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엄마였다. 이때의 내 모습을 보고 평생 낚이셔서 내가 크게 성공할 기질을 타고났다고 믿으셨던 것 같다.


피아노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끈기와 근면성실은 불가사의한 면이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3년 동안 나를 지도하셨던 선생님은 피아노를 팔려고 내놓은 동네분에게 잘 말씀하셔서 저렴한 가격으로(20만 원 정도 했을까?) 인수하도록 엄마를 설득하셨고, 나의 근면성실함에 크게 감복하신(?) 엄마가 내게 피아노를 사주게 된 것이다.


와아, 나도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피아노를 가지게 되다니… 그런데 그렇게 가지고 싶던 피아노를 막상 소유하게 되니 뛸 듯이 기뻤던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식어갔고, 피아노 수업마저 심드렁해졌다. 어려운 형편에 거금을 털어 피아노를 사준 엄마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고, 나조차도 내 마음이 왜 이런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열정이 식은 걸 어쩌랴.


결국 열정이 다한 나의 피아노 수업은 중학교 2학년 때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내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너무나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저녁 준비를 할 때 배경음악 삼아 뚱땅뚱땅 쳐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피아노를 가끔 쳤지만, 레슨을 그만두니 날이 갈수록 실력이 떨어졌다.


엄마가 어렵게 마련해 준 피아노라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도 애물단지처럼 끼고 다녔지만 직장 초년생 시절, 결국 처분하고 말았다. 그리고 섭섭한 마음에 디지털 피아노를 하나 장만했지만 피아노처럼 자주 연주하게 되지는 않았다.

20230705_1.jpg

엄마 생각도 나고 해서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을 멋지게 연주해 보려고 악보를 사서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려보긴 했는데… 하하… 내가 칠 수 있는 곡이 아니었다. 바흐와 모차르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려나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기장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