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린 썸을 발견하기까지...
30대 초반 독립을 한 후 꽃집에서 예쁜 꽃나무를 발견해서 들여놓은 경험이 있다. 파랗고 보슬보슬한 율마였는데 한 달도 안돼서 푸른빛은 누렇게 변해버렸고, 그 후 식물 돌보는데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화분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겨울 들여놓은 포인세티아가 벌써 2년째 건재하는 모습을 보고 울적할 때마다 들여놓은 화분들이 이제 열몇 개가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Green Thumb(식물 재배의 재능)이었던 건가 싶다.
번아웃이 오거나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내 경우에는 식집사가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받는 느낌을 받고 있다. 처음부터 화분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고, 초반에는 꽃을 샀다. 예전에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달달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졌고, 디저트 맛집들이 골목마다 있는 동네로 이사 온 것이 화근이었다.
각종 디저트를 섭렵하고 기분 전환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뱃살이 늘어나는 후유증이 있던 와중에 꽃집을 지나치다가 차라리 그 돈으로 꽃을 사자 싶어서 거베라를 샀다. 5천 원짜리 거베라 한 송이를 와인병에 꽂아뒀는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심지어 물만 자주 갈아주면 거의 3주간은 끄떡없었다. 가성비는 거베라에 미치지 못하지만 스카비오사, 튤립, 라넌큘러스, 장미를 차례로 사다가 오래 볼 수 있는 화분이 나을 것 같아서 종목 전환을 한 것이다.
내가 화분을 들여놓는 기준은 없다. 그때그때 마음이 끌리는 것들을 들이기 때문에 일관성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슬슬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있다. 식집사 초보라면 멋 모르고 들였다가 분갈이하느라 기운 빼는 몬스테라는 볼 때마다 후회되는 놈인데 반해, 커피나무, 녹보수, 싱고니움은 잎이 푸르고 무성한 데다가 조그만 새잎이 나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마음에 드는 나무다.
실내에서 화분들을 지켜보는 건 사계절 모두 좋지만 특히 겨울에 좋다. 공기정화까지는 모르겠고, 밤에 물을 듬뿍 준 화분을 머리맡에 두면 가습 효과는 있는 듯하다. 나는 아무리 추워도 매일 콧바람을 쐬는 편이지만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분들이라면 화분 몇 개 들여놓고 돌보는 재미를 가져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예전에는 보기에 예뻐서 들인 화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죽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다양한 식집사 유튜버들이 쉽고 간단하게 잘 가르쳐 준다.
인터넷으로 꽃도 주문하고, 화분도 주문하는 분들이 많은데 뭐 그것도 괜찮지만 동네 단골 꽃집을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나 싶다. 나 역시 초보 식집사지만 경험을 공유하자면 그저 예쁘고 키우기 쉽다고 덜컥 사는 것보다 내가 사는 집이 키우려는 식물과 궁합이 맞는지(환경이 적합한지)부터 살펴보는 게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처음부터 너무 큰 화분을 들이기보다 작은 화분으로 재미를 붙이는 게 좋겠다. 작은 화분이 키울 만할 때 큰 화분을 들여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