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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기미상궁이 없다.

플라스틱 조각을 삼킨 손님이 잘못?

by Rosary

요즘 뉴스를 보다가 이게 정말 현실에서 일어난 건지 의심스러운 일을 볼 때가 있다. 추석 연휴에 모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초코칩 스무디를 배달시켜 마신 20대 임산부가 스무디 안에 플라스틱 조각을 삼켜 장출혈을 일으켜 결국 아기를 유산했다는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스무디 안에 플라스틱 조각이 들어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뉴스 화면에서 본 플라스틱 조각은 한눈에 봐도 날카롭게 갈린 모양으로 상당히 많이 들어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연유를 알고 보니 황당했다. 주문이 밀려 바쁜 와중에 위쪽 선반에 올려둔 테이크 아웃용 플라스틱 컵이 떨어져 뚜껑이 열려있던 믹서 안에 떨어졌는데 그걸 모르고 그대로 갈아버린 채 손님에게 배달되었다는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업주의 태도였다. 그날 뭐에 씌웠는지 안경을 쓰지 않았고, 시끄러워서 믹서에서 이물질이 들어간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서 머리카락만 입에 들어가도 뱉을 텐데 플라스틱 조각을 삼킨 손님이 이상하다는 투였다.

1009_1.jpg JTBC 뉴스룸 관련 뉴스_10.9.

응급실로 실려간 임산부가 장출혈로 인해 결국 유산까지 하게 된, 백번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도 시원치 않을 과오를 범했음에도 자신의 과실은 회피하고, 이물질을 삼킨 피해자 잘못으로 돌리는 모습은 책임을 벗어나려고 아무 말이나 막 하는구나 싶어도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 보인다. 고의가 아니고 실수라고 해도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사안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싶다.


점차 집밥보다는 외식과 배달음식에 익숙해진 세태에서 이런 사고는 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배달음식을 먹지 않고, 한가한 카페만 찾아다니는 취향이라 나는 비교적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 그대로 복불복, 재수 없으면 겪을 수 있는 사고라 물론 빈도가 잦다 보면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긴 하겠지만 마음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급자족’만이 살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걸까 싶다가도 일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침소봉대(針小棒大)로 해석하는 것 같지만 사 먹는 음식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외식이라는 것이 편하지만 꺼림칙한 선택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온갖 배달음식점과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즐비한데 식당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게 짙은 선팅을 한 배달음식점과 주방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식당들을 볼 때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머리털이 쭈뼛 설만큼 두려울 때가 있다.


불행히도 기미상궁(氣味尙宮) 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 손으로 만들지 않은 음식은 되도록 주의 깊게 냄새 맡고, 잘 살피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먹는 방법뿐인가 보다.


*메인 이미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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