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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Oct 09. 2023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한국어 수업

퍼즐 맞추기 같은 한글 자음과 모음의 마법

십수 년 전 한 문화재단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강의를 했던 적이 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지만 몇 시간이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익히는 것이 가능했다. 당시 수강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히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평범한 청년들이 금세 글자를 만들어가는 것이 기특했다. 그리고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글자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재미있어서 1시간 남짓 수업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모국어인 한글을 익히고, 문장을 만들고 했던 자연스러운 과정을 외국인들에게 쉽게 가르치고 설명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글의 우수성을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모국어에 끊임없이 대입하여 익히려는 습성이 있기에 이를 정확하게 비교해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전혀 다른 언어체계라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서양인들이 선입견이 없어서 오히려 한국어를 수월하게 익히는 반면, 한자 문화권인 중국, 일본인들이 한국어를 익힐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을 흔히 보았다. 본인들의 모국어와 비교해서 왜 다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다 보니 터득이 더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정으로 빠르게 한국어를 배웠던 몇몇 수강생들이 떠오른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 중 대만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한국어에 애정이 커져서 학습량 자체도 월등히 많고, 생각 자체를 한국어로 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느는 게 보였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한국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일도 있었지만 스스로 극복하고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보람도 있고 즐거웠다. 대만으로 돌아간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국어”를 통해 좋은 인연이 되었다.      


한국어 강의를 하면서 쉽지 않았던 경험도 있는데 싱가포르에서 1대 1 한국어 과외를 했을 때다. 그 수강생의 목적은 좋아하는 K-POP의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고 듣고 싶은 것이었다. 문제는 한 단계 한 단계 스텝업을 해야 하는데 자기 수준보다 몇 단계 위의 한국어 구사를 원해서 수업진행이 상당히 어려웠다. 걷기도 전에 달리고 싶어 한달까. 그러다 보니 배운 부분의 복습이 안되어 수업이 늘 제자리걸음에 머무는 느낌이라 결국 내가 백기를 들고 말았다. 몇 달을 해도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으니 돈 받는 게 미안해서 수업 진행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한국어 수업하기 전에 누구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어서 가르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똑같이 가르쳐도 상당히 상대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다시 배우는 입장이 되었을 때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착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 될 수 있었다. 욕심은 누르고 성실함으로 차근차근 익히려는 자세가 오히려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면서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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