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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Oct 26. 2023

메달리스트와 백마 탄 왕자

스스로 충분히 빛났던 사람인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하고 어른스러웠던 배우가 사실은 약에 취한 아저씨였고,  작은 키로 올림픽 무대를 휘저었던 땅콩 검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사기꾼과 결혼하겠다고 해서 뉴스와 커뮤니티가 며칠 동안 시끌시끌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약에 취한 아저씨보다 며칠 전까지 사랑에 푹 빠져있던 메달리스트가 상대방을 스토킹으로 신고하는 사태에 이르면서 이슈를 전부 끌어모으고 있다. 


‘사기결혼’ 이슈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생소한 건 사건 당사자가 40대 아이엄마인 데다가 결혼할 상대방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 사태는 본인의 커리어로 최정점까지 올랐던 중년여성이 고작 20대 중반 정체불명 사기꾼의 물질공세에 홀라당 넘어간 후 한 여성지와 가진 결혼 발표 인터뷰로 촉발되었다. 인터뷰 직후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의 폭로에 이어 사기 전과까지 공개되면서 상대방의 정체가 낱낱이 밝혀지자 그제야 완전히 속았다는 반응을 보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간혹 드라마에서 봄직한 백마 탄 왕자나 평강공주를 현실에서 만나서 하늘 위를 붕붕 떠다니다가 땅바닥으로 그대로 추락하는 사례를 <궁금한 이야기Y>나 <실화탐사대> 같은 프로그램에서 종종 본다. 최근에는 실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온라인으로 접근한 상대에게 속아 거액을 털리는 로맨스 피싱까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방적인 피해자로 볼 수 없는 정황이 하나둘이 아닌데도 그녀는 필사적으로 악당보다는 바보가 되는 걸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SNS에 제공받은 차량, 가방, 여행, 호화주택 등을 자랑하던 흔적만 봐도 그녀가 무엇에 혹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0대 재력가가 이렇게 모든 걸 아낌없이 주면서 떠받드니 ‘나 참 대단하지?’라고 뽐내고 싶었던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는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이미 너무나 대단하고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로맨스’라는 명목으로 이성에게 끌려다니는 사람들은 외롭거나 무능한 나머지 자존감이 극히 낮은 상태에 처한 경우일 때가 많다. 보잘것없고 비루한 삶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고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지만 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백마 탄 왕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으로 자서전을 쓸 수 있을 만큼 성취한 것이 많은 사람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확인도 되지 않은 ‘재벌 3세’라는 타이틀에 이성을 놓게 된 건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녀가 정말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반려자였다면, 그냥 조용히 함께 삶을 꾸려가면 될 일이었다. 굳이 SNS에 요란한 자랑을 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관심을 끌 필요가 있었을까? 백마 탄 왕자로 치장했어야 할 이유는 스스로 알고 있을 텐데 일방적인 피해자로 돌변한 모습은 뭔가 어색해 보인다. 


*메인 이미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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