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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Oct 27. 2023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지는 풍경

어디에도 없던 나무 그늘 "Ombra mai fu"

가을이 깊어가는 거리에서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후드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 아, 올해도 다 지나가는구나. 이제 금방 겨울이 오겠다 싶어 쓸쓸하고 서글픈 생각이 든다. 괜히 울컥해지는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을 찾아 듣다가 귀에 꽂힌 노래가 있다. 


나탈리에 스투즈맨(Nathalie Stutzmann)의 “Ombra mai fu”. 1738년 초연을 했던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Serse>의 유명한 아리아 “Ombra mai fu”는 카운터 테너 버전과 "라르고"로 불리는 연주곡이 익숙하지만 우연히 클래식 채널에서 지휘자 겸 콘트랄토(여성 음역 중 가장 낮은음을 내는 성악가) 나탈리에 스투즈맨의 공연을 보고 그녀의 편안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지휘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음악에 완전히 빠져드는 그녀와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든다.

Haendel - Ombra Mai Fu / Nathalie Stutzmann · Orfeo 55 - YouTube


“Ombra mai fu” 가 워낙 유명한 곡이어서 오래전부터 무슨 뜻인지 모르고 들었지만 카운터 테너의 날카로운 고음이 그리 좋게 들리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나탈리에 스투즈맨 버전을 듣고 이 곡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찾아보니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가 시작되자마자 1막에서 세르세 왕이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운 플라타너스 나무에 대한 찬사를 담은 노래라는 걸 알게 되었다. 



Ombra mai fu di vegetabile, cara ed amabile soave piu 

어디에도 없던, 사랑스럽고 다정한, 감미로운 나무 그늘이여


가사의 뜻을 음미하면서 눈을 감고 들으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바람을 느끼면서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시각적 상상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물론 이 곡에 등장하는 플라타너스는 누런 잎을 하나둘 떨구기 시작한 가을 나무가 아니라 푸르고 무성한 잎이 흐드러진 여름 나무일 것 같긴 하다.  이 곡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가사가 이게 다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부분이 반복되기에 어려운 이탈리아어 가사를 힘들게 외울 필요 없이 흥얼거리는 게 가능하다. 무려 300여 년 전에 이런 곡을 만들어낸 헨델은 정말 멋진 음악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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