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가족이 있고, 내 몸이 건강하다면 무엇을 못하랴.
각종 솔루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쓰는 단어가 자존감, 자기 효능감인 것 같다. 자녀를 교육하거나, 부부간 문제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마법의 단어인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전문가들은 조언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피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에서 벗어나 주위에서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사람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게 있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알아보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사람들끼리 다투다가 상대방을 공격할 때 치명적으로 상처를 주는 단어 ‘주제파악’... 그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국어를 배웠으면 주제를 알고, 산수를 배웠으면 분수를 알아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기도 했지만 살다보니 이 말이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많다.
‘주제파악’이라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타인에게 섣불리 사용할 수 없는 말이지만 스스로에게는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제파악’을 하는 것이 자기 비하나 체념을 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이 높은 이상과 목표를 가지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격려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높은 이상과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클수록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상은 하늘 꼭대기에 있는데 내가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이 비루하다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높은 이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오르거나, 저 높은 곳에 올려놓은 이상을 현실적으로 타협해서 내려놓는 것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 괴로운 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 혹은 잘 나갔던 시절을 붙잡아두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고, 이런 생각에 빠져있어 봐야 현재 내 삶을 바꾸지 못한다. 아무리 빈손인 것 같아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를 늘 응원해 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 건강한 마음과 몸, 이 정도만으로도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가족이나 건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언젠가 가족도 떠날 수 있고, 하루아침에 건강도 잃을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자수성가한 친구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집안이 좋거나, 천운으로 성공한 친구들을 보며 억울함을 되뇐다. 금수저 친구를 아무리 부러워해봐야 내가 가질 수 없는 환경이고,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인생이 술술 풀리는 타고난 운을 질투해 봐야 나에게 그 운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자. 가지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욕심내는 동안 내가 가진 것을 놓치는 실수를 해선 안된다. 가진 것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다고 해도 언제나 내 옆에 머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메인 이미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