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ry Nov 19. 2023

수능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좌절금지

지난 16일, 수능이 있었다. 전국의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이날을 위해 지난 1년을, 아니 3년을, 좀 더 오랜 기간을 ‘수능대박’을 위해 달려온 지도 모르겠다. 다른 모든 관심사는 다 끊고, 오직 공부만 해온 수험생들이나, 예민한 수험생 자녀의 눈치를 보느라 조심하며 큰 소리 한 번을 내지 않고 노심초사했던 부모님들이나 어쨌든 수능이 끝났으니 이제 한 시름 놓고 휴식을 취하는 중일수도 있고,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더 나은 학교 진학을 위해 심기일전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수험생들이야, 아직 겪어보지 못했으니 수능이 인생을 결정짓는 승부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입시험을 치르고 수십 년을 살아온 학부모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만도 할 것 같은데 내 자녀의 일이고 보니,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은 듯하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사람으로 수능의 중요성과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전해보려 한다. 


솔직히 나는 고3 시절에도 전혀 고3스럽지 않은 수험생활을 거쳤고, 부모님도 특별히 고3 학부모라고 내 눈치를 살피거나 하진 않았다.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겠지만 지금도 선명히 나의 고3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에 밤에는 EBS 강의를 틀어놓긴 했지만 그리 열심히 공부한 편이 아니고, 끄떡끄떡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엄마는 정신 차리라는 말 대신 “차라리 자라.”는 말씀을 하곤 하셨다. 엄마 말씀을 잘 듣는 편이었던 나는 늘 차라리 자는 편을 택했고, 당시에도 4당 5락 같은 말이 있었지만 고3 시절에도 7시간 이상 꿀잠을 잤다. 그래서였는지 시원하게 낙방을 했고 재수를 했지만 재수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고, 내 본성이 과하게 태평한 탓도 있지만 모든 걸 접어놓고 수능이 인생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30대 초반 정도까지만 그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의대나 법대처럼 대학 진학과 동시에 직업이 결정되는 경우를 제외하면(이러한 경우에도 모두가 의사가 되고 법조인이 되는 건 아니지만) 30대에 접어들면 인생의 변수가 마구마구 발생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놓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신의 꿈보다 배우자를 선택하면서 당장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고, 갑자기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게 될 수도 있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지만 부당한 일을 강요받거나 몰상식한 직장상사를 만나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수도 있고, 그동안 전혀 관심조차 없던 분야에 매료되어 이직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들이 20대 후반부터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을 해야 할 때 10여 년 전 수능시험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아예 고려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이 나이가 되어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시험을 잘 보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를 겪었을 때 좌절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시련 없이 승승장구만 할 수는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만 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나름의 사연도 있고, 고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안돼, 이제 끝났어.”라고 체념하는 순간 그 사람의 미래는 닫히는 거고, “이 길이 막혔으면 다른 길을 가면 되지.”라고 돌파구를 찾는 사람에게는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지만 더 빛나는 미래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부담스러운 뛰어난 사람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일 생각은 없다. 그만큼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앞날은 충분히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처럼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드린다면 주위에서 다들 내가 망했다고 비웃는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을 살면 된다. 그들의 비웃음 때문에 내가 망하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살지 못해서 내가 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놀랄 만큼 관심이 없다. 그저 심심풀이로 조금 입방정을 떨 뿐, 철천지 원수가 아니라면 집요하게 남이 망할 것인지를 기대하며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다. 대학입시, 취업, 사업, 결혼, 인간관계, … 실패했다고 주저앉아 있어 봐야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 내 인생을 구원해 줄 사람은 나뿐이다. 


나 역시 수많은 실패를 겪고, 지금도 겪고 있다. 그럴 때마다 굳게 닫혀있는 문을 두드리지 않고 재빨리 다른 문을 열어젖히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새로 시작한 일터에 팔순의 동료가 두 분이나 있다. 환갑만 넘어도 새로 일을 시작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80대가 되어도 당당히 제 몫을 다하는 분들을 보니 진심으로 멋지고 존경스럽다. 그분들을 보면서 인생에서 ‘좌절 금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것도… 

작가의 이전글 그렇게 많이 샀던 옷들은 다 어디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