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시장에서 목격한 옷무덤
가정에 있는 조그마한 옷무덤 말고 진짜 거대한 옷무덤을 본 적 있는지… 동묘 구제시장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발품을 팔고, 눈썰미만 좋으면 브랜드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데 나 같은 패알못에 귀차니스트는 그런 곳을 찾아갈 의지 자체가 없다. 최근 고양시 식사동 구제거리가 동묘 시장보다 더 저렴하고, 더 쏠쏠하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패션피플들이 주말 나들이 삼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식사동 구제거리는 동묘 시장보다는 규모가 작다고 하지만 구제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업체들이 모여있어 컨테이너에서 옷이 가득가득 쏟아지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요즘 옷이 떨어지거나 낡아서 입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행이 지나거나 싫증이 난 옷들을 집에 쌓아두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바로바로 버리는 사람도 있다.
95cm 붙박이장과 3단 서랍장에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수납할 수 있을 만큼 옷이 없는 나는 옷이 낡아서 닳을 때까지 입는 편이다. 겨울이면 즐겨 입는 가죽 재킷과 점퍼는 물론 겨울에 입는 모직 코트도 20여 년 전 구입한 것이고, 흔해빠진 티셔츠도 10년 이상 입은 것들도 제법 있다. 한마디로 패션업계의 적이나 다름없다.
원래도 옷을 잘 사지 않았는데 10kg 이상 살이 찌니 더더구나 옷을 살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무슨 옷을 입어도 옷태가 나지 않아 살 빼고 사자 한 게 벌써 10년이다. 한창 날씬한 시절이었던 싱가포르에서 꽤 고가에 구입한 브랜드 옷들도 젊고 날씬한 지인들에게 하사했으며 이사 오면서 미련 없이 전부 처분해 버렸다.
그런 내가 옷무덤을 목격한 감상은 아… 너무너무 아깝다는 거였다. 그리고, 옷을 사지 않았던 지난날들의 나의 행동이 환경보호에 일조를 한 것 같은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컨테이너에서 쏟아진 옷들은 입었던 흔적조차 없고, 심지어 택도 제거하지 않은 새옷들도 꽤 보였다. 구제시장에서도 눈썰미 좋은 손님들은 새 옷과 다름없는 옷들을 쏙쏙 뽑아가는지 신기에 가까울 지경이다. 그렇게 해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 옷들은 업자들이 kg당 가격을 치르고 사가거나, 다시 임자를 만나기 위해 컨테이너에 실려 제3 국으로 떠난다고 한다.
예전에는 겨울이 오면 누구나 입었던 무스탕과 모피 종류는 거의 사라졌고, 가볍고 따뜻한 패딩으로 대동단결되었기에 구제시장에는 멋지지만 무거운 무스탕과 모피 종류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듯하다. 계절마다 새 옷을 사는 걸 즐기거나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제시장에서 눈이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나 같이 옷에 관심 없는 사람은 옷이란 참 거추장스러운 거란 생각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