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처방받기 전에 시도해 볼 만한 몇 가지 방법
매일 아침 푸석푸석한 얼굴로 출근하는 직장동료가 있는데 며칠 전에는 더 피곤해 보이기에 잠을 설쳤냐고 물었더니 한숨도 못 자고 나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루종일 버티냐고 했더니 불면증이 너무 오래돼서 괜찮다면서 힘없이 웃는다. 지난밤처럼 아예 못 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더 길어서 이젠 불면증이 친구 같다고…
아니… 불면증이 친구라면 너무 심각한 건데… 그래서 어쩌다가 불면증이 생겼냐고 물어보니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는단다. 나도 한동안 불면증으로 고생을 했지만 무엇 때문에 불면증이 생긴 지 이유가 명확했다. 잠귀가 밝은 편이었는데 부모님이 새벽에 잠들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고, 거실에서 서성이는 기척에 잠이 깨다 보니 나 역시 비슷한 시간에 잠을 깨다 못해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아버지는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조금 복용하시다가 그만두시고 다시 새벽에 서성이시길래 수면제를 좀 드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수면제를 먹으면 악몽을 꾼다. 그래서 못 먹겠다.” 하시는 거다. 나도 가끔 악몽에 괴로운 경험이 있어 악몽을 반복해서 꾸는 건 잠 못 자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라는 게 십분 이해가 되었다. 어머니는 새벽에 잠을 못 잘 때마다 손빨래를 하거나 마늘을 다듬거나 하는 집안일을 하시는 바람에 잠이 깰 때가 많았다. 하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괴로움을 알기에 안타깝지만 도와드릴 방법을 알지 못했다.
원래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잠이 드는 편이었고, 국제선 비행기를 타도 기내식 먹고 화장실 다녀오면 곧장 꿀잠 모드에 접어들어 6시간이고, 8시간이고 풀수면을 하고 착륙방송이 나올 무렵 눈을 뜨기 때문에 지루한 비행시간을 견디기 위해 기내에서 영화를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낯선 곳에서도 누워서 눈감으면 바로 잠들기 때문에 여행하기에 최적의 유전자를 타고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이 들면 조금만 먹어도 급속도로 살이 찌는 것과 비슷하게 밤에 잠에서 깨는 시간이 길어지니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에 맞서기 위해 수면 패턴 추적을 위한 이유로 스마트 워치를 구입하게 되었다. 스마트 워치 덕분에 알아낸 수면의 질은 생각보다 형편없어서 숙면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을 때도 꽤 있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불면증 초창기에 그나마 나에게 잠을 선물해 준 것은 우연히 알게 된 라디오 방송 <타박타박 세계사>였다. 일요일 오전 7시에 하는 방송이라 본방을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방송을 듣다보니 진행자 남경태 작가의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어찌나 수면친화적인지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드는 체험을 한 뒤부터 본격적인 불면증 치료제가 되었다. 그런데 2014년 남경태 작가가 고작 53세에 암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나를 잠의 세계로 인도한 것은 에릭 사티의 나른한 피아노곡들이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을 위한 유튜브의 세계에서 핫한 콘텐츠는 일명 백색소음 영상들인데 빗소리, 파도소리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들이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박자 맞춰서 각성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였다. 처음엔 "짐 노페디'가 음악가 이름인 줄 알 정도로 알쏭달쏭한 연주곡인데 마성의 "짐노페디"도 전곡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10분 정도 들으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클래식 음악이 대체로 잠들기에 좋다지만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들으면서 잠을 자기엔 무리가 있다. 수면 유도음악으로는 에릭 사티 만한 게 없고, 그만은 못하지만 드뷔시, 슈만도 꽤 효과가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OST의 거장 히사이시 조도 조금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 방법은 최근까지 썼던 것인데 그냥 잠이 깨면 억지로 자려고 하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이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책을 읽으면 눈과 머리가 함께 피곤해져 조금씩 눈이 감기는 경험을 하면서 최근까지 독서로 잠을 청하는 방법을 즐겨 이용했다. 잠이 오기 위한 책으로는 분량이 짧거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이어지는 소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까딱하다가는 잠이 확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책 분량은 적어도 500페이지 이상 작가의 직업적 특성이 드러나는 소설이 적당하다. 선원 경험이 있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나 조셉 콘래드의 『로드 짐』 같은 소설이 매우 효과적이다.
요즘 꽤 쏠쏠하게 효과를 보는 것은 요가 스트레칭이다. 고난도 동작은 당연히 따라 하지 못하고 스트레칭 수준의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근육이 풀리고 조금 노곤해지면서 슬슬 잠이 찾아온다. 요가소년도 좋고, 에일린쌤도 좋다. 어느 채널이든 숨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하는 조근조근한 말투는 잠을 불러들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10분쯤 따라 하다가 고난도 동작에 접어들면 포기하고 그냥 자리에 누워 듣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오늘은 또 어떻게 밤을 보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면 소개드린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중년이 되어 병들고 급노화가 오는 결정적인 이유는 먹는 음식이나 운동 부족보다 수면의 질이 떨어져서일 수도 있다면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숙면을 취하도록 신경 써보라는 의사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왜 잠이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머리맡에서 스마트폰부터 치워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