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뻔뻔하지만 납득되는 런던 위인전』
세계 어디에나 엇비슷한 통근자 부대가 있고, 다들 이윤 경쟁에 임하는 결연한 태세로 엇비슷하게 생긴 보도를 성큼성큼 걷는다. 이들은 런던의 발명품을 입고 있다. 즉, 짙은 색의 재킷과 바지와 넥타이로 구성된 수트는 18세기 댄디들이 처음 시도하고 빅토리아 시대에 다듬어진 의복 형식이다. 통근자는 런던에서 발명되었거나 발전한 이동 수단을 타고 다닌다. 지하철(1855년에 패딩턴-패링던 구간 개통)이 그렇고, 버스도, 심지어 자전거도 런던에서 (발명된 것은 아니더라도) 대중화된 장비다. 비행기는 또 어떤가? 이 기계가 하늘을 안전하게 날 수 있게 인도하는 관제사는 제프리 초서 시대 런던에서 현대적인 형태를 갖춘 그 언어를 구사하도록 훈련받는다. 사람들은 현금인출기(1967년 엔필드에 처음 등장)에서 돈을 뽑아 백화점(1909년 옥스퍼드가에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 등장)에 간다. 집에 돌아와서는 텔레비전(1925년 소호의 프리스가 에 있는 지금의 ‘바 이탈리아’ 위층에서 최초의 텔레비전 시연) 앞에 털썩 쓰러져서 축구(1863년 그레이트 퀸가의 한 펍에서 규칙이 성문화됨) 중계를 본다.
보리스 존슨 『뻔뻔하지만 납득되는 런던 위인전』 중에서
국뽕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싶었던 장면은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었다. 셰익스피어, 산업혁명, 증기기관차, 의료보험, 제임스 본드, 비틀스,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 퀸 등 유서 깊은 사회, 문화 콘텐츠가 등장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였다. 유럽의 한 나라에서 펼쳐지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유니언 잭이 펄럭일 때 괜히 뭉클할 만큼 “국뽕을 하려면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귀감이 되는 이벤트였다. 바로 직전 올림픽이었던 베이징에서 거장 장예모 감독이 대륙의 기상을 전달하기 위해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펼쳤지만 “그들만의 감동”에 그치는 느낌이었다면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세계인이 공감하고 반응하기에 차고 넘치는 콘텐츠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뻔뻔하지만 납득되는 런던 위인전』을 접하고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 떠올랐다. 브렉시트를 주도했고, 코로나 시기에 파티를 벌이거나, 24살 연하 여성과 요란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던 기행(奇行)이 뇌리에 남는 보리스 존슨 총리지만 런던 시장 (2008년~2016년) 당시에는 꽤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던 것 같다. 런던 시장 재임 시절이었던 2011년 펴낸 이 책을 읽다 보면 런던에 대한 애정, 박식함, 유머가 넘치는 보리스 존슨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다소 생소한 부디카, 멜리투스 등의 인물부터 제프리 초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나이팅게일, 윈스턴 처칠 등 런던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인물들을 위트 있게 소개한다. 런던 여행 계획이 있을 때 일독하면 좀 더 특별한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메인 이미지 출처. London P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