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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가질수록 많이 남겨지는 부담

내가 죽으면 내 집을 치워줄 누군가를 위해...

by Rosary

정리정돈을 잘하면 청소도 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소는 잘하는데 정리정돈이 안 되는 사람이 있을까? 반대로 정리정돈은 잘하는데 청소를 안 하는 사람은? 고백하자면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나와 한 가지에서 나온 또 다른 사람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는 먼지가 쌓이는 건 못 보지만 방은 늘 어지럽혀놔서 방에 오솔길이 있을 지경이다!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와중에도 필요한 물건은 쏙쏙 잘 찾아내기 때문에 스스로 불편한 적은 없다. 나 자신에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꼽으라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정리정돈에 한없이 약하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게 나란 인간이고 단점 없는 사람이 있나 우기면서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데 엉망진창인 내 집을 누가 치울 일이 있다면 이 얼마나 큰 민폐인가 싶어서다. 4년 전 이사를 와서 소위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생겼고, 실천하기 위해 넷플릭스에서 정리 신드롬을 일으켰던 곤도 마리에의 책도 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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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 설레는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즘과 정리정돈은 마음 한 구석을 찜찜하게 하는 미뤄둔 숙제 같았다. 언젠가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 테다 싶으면서 잡동사니들을 내놓았다가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물건의 순환이 이어진 지 몇 년째였는데 어떤 문장을 읽고 드디어 실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용한지 모르거나 아름다운지 알 수 없는 물건은 집에 두지 마라.”


아르누보의 시조인 예술과 공예운동 Arts and Crafts을 주창한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와 일맥상통하는 말인 것 같지만 훨씬 직관적으로 와닿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는 “어느 부잣집에 가봐도 그 안에 있는 물건의 90퍼센트를 다 꺼내서 태워버리면 훨씬 나아 보일 것이다.”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의 산문집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을 읽으면서 어렵게만 여겨졌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길이 조금은 보인다. 많이 가질수록 남겨지는 게 많고, 그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


현대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미덕이 꼭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되는,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정직함과 소박한 삶입니다. 소박한 삶에 반대되는 악덕이 뭔지 이야기하려면 그 의미가 분명 해질 텐데, 그건 호사스러움입니다. 내가 말하는 정직함이란 다른 사람의 손해로 내가 이득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 모든 인간이 각자 마땅한 몫을 누리도록 하자는 마음가짐입니다. 원하는 것이 많지 않으면 그 때문에 불공정한 행위를 저지르게 될 가능성도 크지 않을 테니까요.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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