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곶자왈을 방안에 들여놓은 기분
아침에 출근하는데 옷깃을 여며도 칼바람이 세차게 비집고 들어오는 걸 느끼며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날씨가 추울수록 초록이 그리워서 하나둘 들여놓은 화분들 사이로 이름까지 앙증맞은 애기모람이 크는 모습은 기특하기까지 하다. 제주 곶자왈이나 거문오름 등에서 푸른 이끼들과 어우러진 애기모람을 보긴 했지만 집에서 키울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테라리움을 좋아하는 동네 꽃집 사장님이 조그마한 플라스틱 통에 넣어주면서 한번 키워보라고 건네주었는데 너무 조그맣고 여리여리해서 잘 키울 수 있을까 싶었다. 이제 두 달 좀 지났는데 걱정과 달리 벌써 집을 세 번이나 옮겨줄 정도로 쑥쑥 크는 모습이 신기함을 넘어서 신통방통할 지경이다.
가끔 들르는 꽃집 사장님은 연배가 비슷하고 식물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에 어느새 동네 친구가 되었다. 개업할 즈음 작은 화분에서 키우기 시작해서 어느새 천장에 닿을 만큼 대품이 된 목베고니아 마큘라타에서 잘라낸 가지를 삽목한 꼬마 베고니아도 어찌나 잘 자라는지 이제 한 달 보름 정도 지났는데 계속 새잎을 꺼내서 보여주고 있다.
나눔 해준 꼬마 식물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사장님 모습이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가끔 꽃도 사고, 화분도 사지만 어쩌면 나눔 해주시는 식물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엔 꼬마 아이비와 달개비를 꺾어주시면서 잘 키워보라고 건네주는데 마치 도전과제를 받은 듯하다.
한창 화려하고 예쁜 단풍이 모두 떨어지고, 이제 곧 앙상한 가지만 남겠지만, 내 방에는 초록이 가득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추운 겨울을 함께 지낼 초록 친구들을 방안 가득 들여놓으니 괜히 부자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