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필통
하얀 뚜껑 속엔
로봇이 팔을 번쩍 들고 있었다
필통을 열면
동아연필은 키 순서대로,
지우개는 가장 끄트머리에
새 연필 냄새가
교실 속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첫 시간 시작 전
선생님 몰래
친구들에게 슬쩍슬쩍 보여주는
그런 시간
뚜껑 속 로봇도
덩달아 어깨를 으쓱,
내 마음에도
작은 우쭐함이 번졌다
그러다 어느 날
필통 속 연필심 하나가
툭, 하고 부러져있다
천하무적 로봇도
오늘은 시무룩해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하얀 뚜껑을
다시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