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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Oct 03. 2023

까만 밤하늘에 별이 내린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니 인생을 망가뜨려 버릴 거야."


다닌 지 얼마 안 된 광고 회사를 퇴사하던 날. 끔찍한 그 속을 알아버린 나는, 그들이 공짜로 날 놓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마주 앉아 악마 같은 눈을 하고 쏘아대는 그 소릴 또 들어야 하면 어쩌나 하고 마치 수분은 1도 안 남은 끓는 냄비처럼 맘을 졸여댔다. 출퇴근 길을 함께해 주며 날 옆에서 지켜봐 온 남자친구는 전폭적으로 나의 퇴사를 지지하며 마지막 그날까지 날 그곳에 데려다줬다.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몇 달이 마침내 마침표를 달던 참이었다. 다행히 퇴사 절차는 평소 인자하고 다정했던 인사과 시니어 분과의 면담으로 그쳤고, 내가 짧게 있던 팀의 시니어 둘을 불러 내가 맡았던 일들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녀는 내가 두 번 다시 오피스를 밟지 않아도 되게끔 그 현장에서 모든 걸 정리해 줬다. 인수인계 과정에서 같은 팀 시니어는 갑자기 날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클로이, 근데 넌 일을 되게 잘해왔어." 퇴사하는 과정에서 내가 행여나 그의 이름을 부를까 걱정이 된 건지, 아님 아무도 모르게 그는 실은 좋은 사람이었던 건지, 그의 속은 알 수 없으나 짧지만 하차하는 길에 함께 일했던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날 저녁이 되자, 솟구치는 안도감에 비로소 웃어 보이는 나와, 또다시 이 원점에서 만난 내게 제법 성이 난 나는 그렇게 분열된 채로 요가 동작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사바 아사나, 모든 생각들을 놓고 매트 위 털썩 누워 내가 없어지는 시간. 그 순간 다소 거친 그 한마디가 봉긋 떠오르며 나를 덮쳤다. 놀란 나는 속에 쥐고 있던 귀한 조각들을 쏟아버리고 만다.


"나는 책벌레라 불릴 정도로 어릴 적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어왔잖아? 근데 넌 그렇지 않은데도 글을 잘 써. 네가 미니홈피에 올려둔 일기들을 봐왔어. 내가 볼 때 그건 너의 재능인 것 같아."


"이 자소서, 본인이 쓴 게 맞아요? 어디서 돈 내고 갖다 쓴 게 아니라 정말 본인이 스스로 쓴 게 맞다면, 당신은 작가가 되어야지, 여기 호텔에 계실 분이 아니에요."


"난 언니의 글이 너무 좋아요. 막, 어른 동화 같아. 그러니 자주 좀 써줘요."





시간이 흘렀을 어느 주말 아침 눈을 떴다. 새하얀 천장에 떠있는 두 달 된 제임스의 빨간 생일 풍선이 보인다. 그날은 내가 화를 내서 미안하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해야 할 때라고 그 목소리는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는 호소에 가까운 마지막 한마디를 붙였다.


 "..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횔지 몰라."


삶이 글을 써달라고 말한다. 네가 가진 건 경험뿐이고, 네가 필요했던 것도 글을 쓸 수 있는 소스들뿐이었다고. 넌 이미 넘치는 소스장을 가졌고 이제는 제발, 부디 그걸 써달라고. 이미 무지개 빛깔을 넘어선 나의 이력서가 난 끊임없이 내게 필요한 걸 늘 취해오고 있었단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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