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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llus May 31. 2024

나 홀로 이탈리아 여행기_16

20240426 - 20240508

투어가 끝난 뒤 나는 A씨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권유했다. 가이드님이 추천해 준 맛집 중에 고르다가 둘 다 지쳐있었기에 테르미니역에서 제일 가까운 스페인 광장의 레스토랑에 가기로 합의했다. 걸어가긴 힘들고 지하철을 타기로 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예상치 못하게 일단 헤어지게 된다.



지하철의 경고음이 울리고 문이 닫히기까지의 시간이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훨씬 빨랐다. 몸을 넣으려다 지하철 문이 닫혀서 멈칫했는데 지하철 문이 다시 열렸다. 탈까 말까 망설이는데 전철 안에 타고 있던  한 이탈리아 남자가 친절하게도 우리가 탈 수 있게끔 다시 닫히는 지하철 문을 양손으로 벌려주는 것 아닌가.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닫히는 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고 그 이후 문이 쾅 닫혀 내 뒤로 따라오던 A씨와는 잠시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스페인광장 Spagna 역에서 다시 재회한 우리는 레스토랑 알라 람파 Ristorante Alla Rampa로 향했다. 스페인 광장 한 구석에 있는 큰 식당이었다. 손님도 없는데 야외 식당의 제일 구석으로 주려고 하길래 거절하고 좀 더 앞자리에 앉았다. 이런 식의 인종차별은 불쾌하지만 음식 맛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아시아인만 한 군데로 몰아넣거나 구석탱이의 자리로 안내하는 것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아주 흔한 인종차별이다. 우리 테이블 담당의 젊은 청년 빼고는 다른 서버분들은 아주 친절했기에 별 말 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한다. 아무튼 부라타 치즈 샐러드 Burrata con rucola e pachino와 가이드님이 추천해 주신 호박꽃 튀김 Fiori di zucca ripieni di mozzarella, 해산물파스타 Strozzapreti al imperiale, 그리고 나를 위한 생수 하나와 A씨를 위한 맥주 한 잔을 시켰다.



식전빵은 퍼석하니 별로였으나 부라타치즈가 기가 막혔다! 내가 살면서 먹어본 부라타 치즈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씹자마자 아주 신선한 우유향이 코끝까지 제대로 퍼졌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나는 연신 감탄하며 먹었지만 A씨에겐 별로였던듯했다.


그다음 호박꽃 튀김과 파스타가 나왔다. 여기 호박꽃 튀김은 메뉴명에 그대로 적혀있다시피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간 것이었는데.....이렇게 되면 호박꽃은 그냥 거들뿐인 모짜렐라 치즈 튀김이었다. 맛이야 있지만 중간엔 물려서 넘어가지 않았다. 두 번의 실패 끝에 나는 호박꽃튀김은 원래 이런 요리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다음 해산물 파스타 역시 크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살레르노에서 먹은 해산물 파스타와 비슷해서 해산물 베이스의 토마토소스는 대충 다 이런 맛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또 A씨에게 파스타가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역시 입맛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포르투갈을 여행하고 온 A씨는 연신 나보고 그다음엔 리스본을 가라며 포르투갈을 추천했다. 여유롭고 무엇보다 아주 음식이 맛있었다고. 이제까지 나에게 포르투갈을 추천한 것은 A씨뿐만은 아니었으나 이상하게 선뜻 마음이 향하지 않았다. 뭐 언젠가는 가겠지 싶었기에 나는 기회가 되면 가겠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혼자 여행의 힘든 점을 서로 토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시간 비행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비행기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A씨가 로마에 올 때 탄 국적기가 좌석이 너무 좁았다고 불평했다. 나는 그다지 좁은 것은 느끼지 못했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는데, 알고 보니 그가 탄 비행기에는 USB 포트도 없었을 뿐 아니라 스크린도 작았다했다.


"어? usb 포트가 없었다고요? 제가 탄 비행기에는 있었는데?"

"혹시 비즈니스 석 타신 건 아니에요?"

"에이 설마. 이코노미 탔죠. 근데 진짜 usb 포트 있었어요. 스크린도 별로 작지는 않았고."


A씨와 나는 서로 놀란 얼굴로 마주 봤다. 이제까지 비행기 모델에까진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편명이 같으면 대충 같은 비행기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A씨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도 USB 포트가 없고 모니터도 작은 좁은 좌석일까 봐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는 내일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는 A씨를 부러워했다.



마지막으로 갖다 주는 물티슈가 귀여워 사진 찍었다. 어째서 유럽 식당들은 물티슈를 제일 처음에 갖다 주지 않고 이렇게 리프레쉬 개념으로 갖다 주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식당에 앉아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드니 전염병이 그렇게 퍼진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A씨와 나는 토털 73유로의 식사를 끝내고 테르미니역까지 천천히 걸어오며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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